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사상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는 테러일까 아닐까. 미국 부시대통령은 테러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이는 군사적 테러보다 더 가공할 만한 시장에 의한 테러다. 단지 시장을 통한 경쟁체제가 전력산업의 효율성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의해 추진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5천만명에 달하는 미국과 캐나다 국민들과 25만명의 영국 런던 시민들을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은 것이다.
전통적으로 전력산업은 대규모 네트워크 장치산업으로 초기투자비가 많이 소요된다. 뿐만아니라 설비규모가 커질수록 생산원가가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 효과와 발전, 송배전 등 전체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결집하여 운영함으로써 시너지 효과가 커지는 ‘범위의 경제’ 효과가 매우 큰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전력은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이루어짐으로써 저장이 불가능한 상품이다. 전력산업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가나 공기업이 독점적으로 전력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동서냉전 붕괴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정책은 시장을 통한 효율성을 명분으로 전력산업에 대한 공공적 통제기반을 없애는 대신 사유화와 규제완화를 기반으로 하는 경쟁체제로 전력산업을 급속하게 재편했다.
미국도 1990년대 초반부터 연방정부 차원의 규제완화를 추진 ,주정부 등 공공소유로 지역별 독점체제로 운영되던 전력회사를 발전과 송배전회사로 분할하여 민간에 매각하는 사유화 작업을 벌여왔다. 또 송배전망을 개방해 민간 전력회사들간 경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에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은 2000년과 2001년 정전과 요금폭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캘리포니아 사태 때였다. 캘리포니아 사태는 결국 시장을 포기하고 과거와 같은 규제체제로 되돌아감으로써 일단락된 상태이지만 담합, 공급망 조작등 사태의 발단이 된 시장조작행위에 대한 조사와 법적 책임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뉴욕을 비롯한 미국, 캐나다 동북부 지역의 대규모 정전사태 또한 일단규제완화로 인한 전력회사의 투자기피가 원인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규제완화로 인한 투자기피뿐 아니라 공급량 조작행위 가능성도 있다. 충분한 공급능력이 있음에도 가격을 높이기 위해 공급량을 줄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또한 송배전망 기능을 급속도로 약화시킬 수밖에 없는 전력거래시스템의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 만약 송배전망이 취약하다면 장기투자를 통해 보강하는 방안도 있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는 취약한 시스템에 대비하여 전체 전력공급의 안정도 향상을 위해 전력의 흐름을 통제했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값이 싼 오하이오주의 대규모 수력발전량이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대도시로 흐르게 운영하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런던의 사태를 계기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문제점이 다시 한번 도마위에 올랐지만, 우리나라 산업자원부가 제시하는 대책은 구조개편이후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이 인하될 것이라며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정당성을 홍보했던 산자부 관계자들은 다 어디갔나.
지난 수년간 전력노조는 구조개편의 위험성에 대해 정부 당국자와 국회의원, 청와대, 시민단체 등 각계에 알려왔다. 그때 경고했던 사항들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산자부에서 전력산업구조개편의 교과서로 삼고 있는 우리보다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영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이제라도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허상을 걷어내고 국민적 고민을 통해 바람직한 전력산업 발전방향을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
/김영배.전력노조 경기북부지부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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