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웃도는 몇 명의 지기(知己)들이 있다. 매달 같은 날에 만난다. 만나면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자식들 얘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을 지껄이는 것이 전부일 뿐인데, 새벽에나 헤어지게 된다. 이번 달 만남 때도 자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늘 그랬듯이 벨을 울리지 않고, 자물쇠를 직접 열고 들어섰다.
‘애비 이제 오니?’ 어머니가 한잠도 못 주무신 채 기다리고 계셨다. 늦는다는 내용의 전화통화를 했음에도, 괘념치 않으시고 걱정이 되셨나보다. 당뇨와 고혈압으로 겨우 거동하시는 어머니다. 아내가 일을 갖고 있어, 여름과 겨울에나 몇 주 정도 함께 지낼 수 있는 어머니다. 큰 아들 곁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아시는 어머니, 형수 휴가 좀 주자며 모셔놓고는 걱정만 끼쳐드렸다. 이러저러한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안심이 되신 듯 잠드신 어머니 얼굴을 들여다본다. 백발, 잔주름 등 세월의 무게가 무겁게 내려 앉아있다.
현실의 벽에 직면해 힘들 때나, 알 수 없는 고독감이 엄습해 올 때에 떠올리곤 하는 어머니다. 아직도 어머니에게 응석부리고픈 마음이 있기 때문일게다. 어쩌면 청소년기를 유난히도 심한 방황으로 보냈던 탓에, 무척이나 어머니 애를 태우던 자, 그 어머니에 대한 원죄의식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역정 내시는 방법을 모르셨을까? 회초리 드는 방법을 모르셨을까? 자식의 방황을 당신의 잘못인양 타는 속을 삭이시던 어머니다. 그 조차도 청소년기에는 싫었다.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어머니 속을 태우던 청소년기에 접어든, 자식을 향해 회초리를 들고서야 어머니의 쓰린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돌아 가 쉬고 싶은 고향과 같은 존재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서는 문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생각에’ ‘어머니 은혜’의 노랫말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주희 선생께서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라고 했다는데, 반포보은(反哺報恩)은 못하더라도 마음하나 편안하게 해드려야 되리. 어머니 얼굴에서 배어나는 세월의 무게가 애처롭다.
백 운 화 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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