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기도는 봉인가

세상을 살다보면 참으로 말도 안되는 웃기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시의 원지동 추모공원의 포기와 국립의료원 유치계획 발표가 바로 그것이다. 서울시는 최근 민원을 이유로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을 포기하고 경기도가 유치하려던 국립의료원을 유치하고 이곳에 11기의 화장로를 설치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시는 당초 수많은 시민·종교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서초구 원지동에 화장로 20기와 납골당 5만위를 건립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원지동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사실상 이를 백지화하고 국립의료원을 유치하고 화장로 11기만 설치한다고 돌아서기에 이르렀다.

서울시의 추모공원조성사업은 늘어나는 화장 및 납골수요를 충족한다는 의미외에 납골시설은 혐오 시설이라는 편견을 불식시킨다는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이를 포기하고 국립의료원을 유치하는 대신 이곳과 경기도관내에 84기의 화장로와 납골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25개 자치구에 납골시설을 분산 설치토록 할 계획이라면서 자치구에서 2005년까지 납골시설을 건립할 경우 사업비의 100%를, 2010년까지 건립할 경우 50%를 지원한다는 사탕발림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서울의 각 구청에서는 경기도의 각 시·군에 추파를 던지며 장사시설을 공동으로 건립하자는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지역주민의 이기주의에 떠밀려 추모공원을 백지화하고 골치 아픈 문제를 자치구에 떠넘기려는 정말 보신주의적인 작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고 하겠다. 더구나 경기도나 파주시와 사전 협의도 없이 파주시 용미리에 있는 서울시립 묘지내에 10만명 규모의 유택(幽宅)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서울의 경실련에서도 서울시를 성토하고 나섰겠는가. 이러한 행태에 대해 경기도 즉각 대응하고 나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경기도는 우선 서울시에서 원지동 추모공원을 백지화하고 아무런 사전 협의없이 파주지역에 대규모의 유택동산을 조성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대의견을 분명하게 전한 바 있다. 또한 혐오시설을 경기도에 떠넘기고 의료시설을 가져가려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이기주의라며 중앙정부에 조정신청을 제출하는 문제를 심각히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와는 달리 경기도에서는 각 시·군에 있는 기존 공설묘지를 납골시설로 전환하거나 공원화 하는 계획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1천만 도민들의 장사수요를 충족시키고 질 높은 장사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가칭 경기도립장사시설을 조성키 위해 현재 타당성 용역을 실시 중이다.

도립 장사시설은 20개의 화장로와 12만위 규모의 납골시설, 빈소수 10실

규모의 장례식장과 매점, 식당, 휴게실, 휴식공원은 물론 농·특산물 판매전시장을 갖춘 초현대식으로 건립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이다.

누가 뭐래도 자치단체에 있어서의 고객은 바로 주민이다. 기업이나 종교단체·시민단체는 물론 각종 법인 등의 모든 객체들도 빼놓을 수 없는 고객이다. 그렇다고 집단민원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익의 실현과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을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행정·재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더라도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자치단체의 의무이자 시대적 소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장사정책은 지자체가 해결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는 사실에 이론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회피하려는 행태는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경기도는 더 이상 서울시의 봉이 아니다. 지난날 서울시가 마치 작은집 취급하던 경기도는 이제 서울을 능가하는 전국 최대의 광역 자치단체로 성장했다. 시대가 변화를 낳는다면 서울도 이제 변해야 한다.

/홍승표.시인.道가정복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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