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운용과 이종환

원로 방송인 이종환씨가 ‘음주방송’ 파문으로 DJ와 방송국내 주요 직책에서 사퇴했다. 생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언사를 늘어놓아 청취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종환씨는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청취자들께서 느끼셨을 배신감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라며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많이 욕해주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사퇴의사를 밝혔다. 평생을 방송인으로 살아오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기를 받아왔던 그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요, 사퇴결정까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훼방론’으로 지난 한달간 여론의 초점을 받았고 급기야 국회의 공직사퇴권고 결정까지 받은 김운용 IOC 위원의 대응은 사뭇 대조적이다. 자신에 대한 비난과 책임을 일체 인정 않으면서 음해와 인신모독으로 비판자들을 몰아 붙이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파동시 보여 주었던 자기합리화와 변명은 이번에도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 김씨의 태도를 바라보는 국민들과 체육인들은 아쉬움은 물론 심지어 분노를 느낀다. 지도자로서 도덕적 헤게모니를 심각히 훼손당한 김씨는 지금이라도 적절한 해명과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기대한다.

불행하게도 김운용 위원의 말로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가는 형상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비호로 1972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된 이후 1986년 IOC위원, 1992년 대한체육회장 및 대한올림픽위원장 등 화려한 그의 국내외 이력과 활동에 비추어 그는 태권도와 스포츠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김씨만큼 국내외 스포츠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 배출될지 염려될 만큼 그의 공로는 충분히 인정돼야 한다. 그럼에도 물러나야 할 시기를 놓쳐 버린 그는 버티면 버틸수록 입지가 좁아져 가고 있다. 전국구 국회의원인 그가 급기야 동료 의원들로부터 국회윤리위원회에 징계를 요구받기에 이르렀으니 그는 수숫대 끝에 앉아 있는 잠자리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데도 자신을 비난한 몇몇 인사들에 대해 명예훼손 고발 운운하고 있으니 애석하기 그지없다.

돌이켜보면 2년전 IOC 위원장 선거 패배 이후 김씨 스스로 일선에서 물러나 후진양성에 매진해 줄 것을 많은 이들이 기대하였다.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퇴장하는 시점이었으나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과 독선을 부린 결과 김씨는 실기를 하였다. 몇달후에 그가 영원한 추종세력으로 믿었던 태권도인들에게 낭패를 당하더니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비애국적 처사로 국민들에게까지 모진 비난을 받고 말았다. 여론의 사퇴압력을 견디지 못한 그는 급기야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국내 주요 직책을 사퇴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그의 위상이 급격히 위축된 것처럼 보이지만 IOC위원과 국기원장, 그리고 집권여당 국회의원인 김씨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사실 이번 평창올림픽 유치 실패의 본질은 김씨의 ‘훼방론’은 아니다. 스포츠외교시스템과 우리 체육구조에 대한 현실을 점검하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모색하는데 초점이 모아지지 않고 일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김운용 위원 1인 독주가 ‘훼방론’을 확산시킨 발단이었음을 상기하면 이번 파동은 김씨 스스로가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는 지금부터라도 국민들과 체육인들의 여론을 겸허히 수용하고 여생을 후진양성에 매진하는 마지막 애국심을 보여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방송인 이종환씨가 보였던 용기를 스포츠지도자 김운용씨에게 기대한다. 이종환씨가 그랬던 것처럼 김씨의 홈페이지에 ‘국민들께서 느끼셨을 배신감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라며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많이 욕해주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라는 자기 고백을 듣고 싶다.

/안민석.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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