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운전기사가 승객을 태우고 출발하는 순간, 지팡이에 의지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운전기사는 못본 체 할 수 없어 할머니를 태웠다. 때마침 단속 나온 구청직원이 정류장에 차를 바짝 대지 않은 채 승객을 태웠다며 정차위반으로 딱지를 끊었다.

이 모습을 버스에 탔던 신문기자가 목격하고 자사(自社)신문 지상에 운전기사의 선처를 호소하는 글을 썼다.

보도가 나간 뒤 해당 구청 홈페이지에는 “법도 중요하지만 구청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딱지를 뗄 게 아니라 친절상을 주시길 바랍니다”등 운전기사를 선처해 달라는 주문이 꼬리를 물었다.

해당 구청은 그래서 “정상을 참작해 이번에 한해 계도(啓導)조치 합니다”라고 운전기사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구청 홈페이지엔 “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할머니께서도 기사님께서도 평등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딱지는 꼭 떼야 합니다”라는 글도 함께 보였다.

사실 대도시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거의 버스 운전기사에게 ‘왕따’를 당한다. 배차 시간에 쫓기는 데다 태우더라도 균형을 잡지 못해 ‘안전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퍼런 승객들이 정류장에 서 있는 데도 그냥 지나치는 버스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화제의 운전기사는 정차위반까지 하며 노인을 태웠다. 이 때 현장을 목격한 기자가 신문을 통해 선처를 호소했고, 해당 구청장은 벌금·과태료 대신 계도로 조치했다. 그런데 누구든지 법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자가 나왔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주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원칙론자는 이 세상을 살면서 운행차랑도 행인도 없는 새벽녘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에 따라 길을 건넜느냐, 과속·주차위반은 안했느냐, 핸드폰 수화, 안전벨트 착용 등 교통 관련 법규를 모두 지켰느냐고 따졌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법이나 공중도덕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도, 지체 장애인도 교통법은 지켜야 한다고 당당히 홈 페이지에 올린 그 사람은 얼마나 당당한가. 부럽다. 정녕 하늘을 우러러 정말 한점 부끄럼 없다는 사람들의 얼굴과 눈빛은 과연 어떠한 지 만나고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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