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50주년 이후

Y모씨는 나이가 일흔여섯이다. 50년을 왼발이 없는 지체부자유의 몸으로 살았다. 그가 다리를 잃은 것은 1953년7월27일 밤 9시50분께다. 시간을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중상을 입은지 약 10분만에 그날 밤 10시로 예정된 정전협정의 총성이 멎었다는 주위의 말로 그렇게 짐작해 왔다. 동부전선의 포병이었다. 당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조인된 12시간 이후의 정전협정 발효 시간이 다가오면서 국군과 인민군의 전투는 쌍방간에 여느 때보다 더욱 치열했다. 정전이 되기 전에 땅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피아가 포탄이나 총탄을 있는대로 쏟아부어 섬광으로 칠흑을 밝히는 격전속에 적의 포탄이 Y씨 주변에 작렬한 것이다.

“그래도 난 살았지만 함께 싸웠던 부사수는 전사했어…. 지금도 눈에 선해….” 눈망울엔 어느덧 이슬이 맺힌다. “TV로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협정 50주년 기념식도 봤지. 그 때 도와준 참전국 노병들이 식장에 참석한 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하더구먼.” 눈에 맺힌 이슬은 이윽고 눈물이 되어 뚝 떨어진다. 한참만에 입을 연다. “평양서 전승 50주년 기념식이라면서 군사 퍼레이드 벌이는 것도 TV로 보았어. 그 사람들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어.” Y씨는 한국전쟁으로 인민군들도 숱하게 죽었지만 알고보면 그들이 무슨 죄냐면서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바로 전범자라고 말한다.

“세월이란 정말 무서워… 반세기가 지나다 보니 시류가 달라져 이상한 소릴 하는 사람들이 많더구먼. 다 좋은데 전범자 집단을 영웅시하는 해괴한 언사에는 정말 분통이 터진단 말야.” Y씨는 어느새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우리야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비록 불안한 평화이긴 했지만 목숨 바친 전우들 덕분에 나라를 지켜 이만큼 살았음 더 욕심이 있을 수 없는거여…” 그러면서 지난 세월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세월이 문제라며 걱정한다. 노병은 그 이유를 지금 사람들은 전쟁의 참화를 너무 모르고, 평양의 술수를 너무 모른다고 개탄한다. 정전협정 50주년, 그 이후를 염려하는 Y씨의 말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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