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영화계는 ‘스크린 쿼터제’에 대한 논란으로 뜨겁다. 한 여름의 불볕 더위 만큼이나 영화인들은 물론 반대입장이고 재경부는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위해 축소가 불가피 하다’는 입장이다. 이 제도가 처음 실시된 나라는 놀랍게도 영국이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일부 국가와 남아메리카,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이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브라질, 파키스탄, 이탈리아 등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제도를 상당히 잘 지키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이러한 제도 자체가 꼭 필요한가. 물론 우리 영화 산업은 보호해야 하고 우리 영화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 유지해야 할 만큼 우리 영화가 경쟁력이 없는 것인가. 팍스 아메리카나를 상업성과 대중성으로 교묘히 포장한 할리우드산 미국 영화가 뭐 그리 무서운가. 우리에게는 ‘쉬리’ ‘공동경비구역’ ‘친구’ 등의 영화가 있다. 작품성으로 논한다면 ‘취화선’ ‘박하사탕’ 등의 우수한 영화도 있다. 스크린 쿼터 제도가 일부 축소되었을 때 우리는 열악한 제작환경, 자금력 등으로 우리 영화는 곧 사양길로 접어드는 줄로 알았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는가. 보다 진취적으로 사고를 바꿔 보자. 미국 영화와 경쟁해서 이길 생각은 왜 못하는가. 거꾸로 우리 영화를 미국에 수출하여 달러를 벌어들일 생각은 왜 못하는가.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에 국적을 따질 일인가. 우리 영화가 재미없다면 나는 재미있는 다른 나라 영화를 볼 것이다. 왜 영화는 공급자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수요자 입장에서 좋은 영화, 잘 만들어진 영화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문제는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미투자협정에 관련된 문제가 아닌가. 우리가 좀더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면 될 것이다.
이제 국제화·세계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동참하는,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다. 아직도 울타리 안에서만 놀 것인가.
/오병익. 경기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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