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집착(執着)

공자님께서는 40세에는 의혹이 없고(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뜻을 알며(知天命), 60세에는 무엇을 들어도 귀가 순해지고(耳順), 70세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라 해도(從心所欲)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不踰矩)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재판을 하다보면 이런 공자님 말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재판한 것중에 기억나는 것으로는 수년간의 민사소송 끝에 패소가 확정된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께서 민사재판에서 증언을 한 증인이 위증을 했다며 고소를 하였다가 무고죄로 벌금을 받고, 또 고소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또 고소하였다가 실형을 살고 나왔다.

그런데 이제 포기할 때도 되었을 텐데 또 고소를 한 것이다. 재판을 담당한 나로서는 할아버지께서 오죽하면 그러시는가 하여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민사재판은 대법원은 물론 재심까지 갔어도 뒤집혀지지 않았고, 형사재판도 이미 무고죄로 3번씩이나 유죄가 인정된 것을 어찌할 것인가. 선고하는 날 할아버지께 이제 인생을 정리하실 나이신데 계속 여기에 집착하시면 어떡하시냐. 억울하시겠지만 이제 그만 잊어버리시라고 권유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득불 실형을 선고하였지만 차마 법정구속은 하지 못하였다. 그 할아버지는 끝내 그 사건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세상을 뜨신 것은 아닌지….

또 하나는 할머니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을 한 할아버지가 다툼 끝에 할머니를 흉기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기억난다. 그 사건을 재판하면서 노인네들도 질투심은 젊은이들 못지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런가 하면 10여년전 부산 근무 시절 부산 근처 한 섬의 땅값이 오르면서 네 땅, 내 땅 경계 없이 평화스럽게 살던 3,000여 섬주민들이 동네 어른들까지 모두 송사(訟事)에 휘말려 서로 으르렁거리던 서글픈 기억도 되살아난다.

사람이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그렇게 힘든 것인가. 어차피 죽으면 한 줌 바람에 날아가버리거나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힐 텐데 왜 차분하게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도 그렇게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천명(天命)을 알아야 할 나이가 점점 다가오건만 아직 하늘의 뜻을 몰라 헤매고 있는데, 60이 되어서도 남의 얘기를 들으면 화를 벌컥 내고, 70이 되어서도 마음 가는대로 따라 했다가 법을 어겨 낭패를 보고 있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양승국.변호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