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화재보호와 개혁적 문화재 정책

우리나라는 ‘효’문화 나라다. 지역의 곳곳에 효의 전설과 유물 그리고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도는 효의 고장임을 자랑하고 있다.

그 뿌리가 화성시의 ‘융건릉’이다. 22대 정조가 불쌍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무덤을 찾아 묘지를 훌륭하게 만들고 자신의 묘도 곁에 만들었다. 융릉이고 건릉이다.

정조대왕이 백리 밖의 묘지를 찾아 올 때마다 고갯길에서 “불쌍하게 돌아가신 우리아버지 한시 바삐 뵙고 싶다”면서 “지루하다, 지루하다” 했다고 해서 ‘지지대 고개’가 있는가 하면 ‘행궁’을 지어놓고 며칠씩 묵었는데 그 화성 행궁이 복원되었다. 그 둘레에 성곽을 쌓고 병사들을 훈련시키기도 했다. 수원시에 있어서는 화성과 연무정이다. 화성은 유네스코 문화재에 등록되어 세계적인 유산이 되었다. 경기도에서는 화성시의 융건릉과 수원의 행궁, 연무정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문화재 관광명소로 개발하며 우리나라의 효문화를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당시의 관료와 백성들에게 교훈이 되었다고 해서 경기도는 효문화를 정체성으로 확립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효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효행박물관을 세우기로 하였다. 화성시에 융건릉 이웃에 부지선정을 의뢰했다. 융건릉을 위해 정조대왕은 ‘용주사’를 지었고 보통리 저수지도 만들었기에 이 곳 일대를 효의 테마파크로 설계하고 효행타운건설도 계획하고 있다. 큰 테두리 한가운데 효행박물관 건축후보지를 몇 군데 선정했으나 허사가 되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500m이내에는 건축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법규때문이라는 것이다. 화성시의 주장도 그렇지만 관광객이나 효의 문화재를 통한 교육을 위해 찾아온 학생들이 큰 묘지 두개만 보고 가는 것보다 곁에 효행박물관에 들러 전시된 각종 효의 유물들을 보고 듣고 교육도 받고 효행실천의 실습도 하는 연계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문화재를 보호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건축물이 아니다. 문화재 보호와 효문화계승을 위한 필수적인 부속건물이다. 관람객이 묘지를 보고 다시 문밖으로 나와 버스를 다시 타고 효행박물관을 관람하여야 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문화재를 보호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더욱이 개인이 아니고 경기도와 화성시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전 지구촌에 알리고 효문화를 꽃피우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는 일에 문화재를 관리하는 분들의 동참이 요망된다.

효행박물관의 설립에 무게를 두는 것은 권위주의시대의 효문화를 계승하자는 것이 아니다. 새 시대의 새로운 효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깨우치자는 것이다.

정조의 효심을 군주가 어버이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니 백성도 그 뜻을 이으며 군주에게 충성하자는 권위주의시대의 충효사상으로 받들자는 것이 아니다. 정조는 실학자들을 아끼고 키우며 실학을 통한 개혁을 내세웠다. 실학은 근대화의 뿌리다. 근대화의 바탕은 문예부흥이다. 르네상스는 중세의 암흑시대를 극복해서 고대의 이상을 찾아 근대의 과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자는 것이다. 우리의 효문화도 권위주의시대의 충효문화를 극복해서 정조의 실학정신을 바탕으로 고대의 예효(禮孝)문화를 이끌어 내 새 시대의 새로운 효문화에 새로운 인식을 효행박물관의 교육을 통해 이루어내야 한다.

예(禮)는 자유의 정신적 바탕이다. 아름다운 수직적 효정신이 자유시대의 개인주의로 흐트러졌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집안일은 서로 도와 즐겁고 명랑한 생활을 하자”는 가훈과 함께 가정과 지역과 국가를 새로운 효문화로 번영케 하는 비전을 내세워야 한다. 문화재보호를 위한 경직된 법률적관행을 타파하고 개발하며 창조하는 일이야말로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자유를 바탕으로 개혁을 외치는 참여정부의 실천과제라 하겠다.

/이달순.수원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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