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철은 더위에 지쳐 입맛을 잃기가 쉬운 계절이다. 땀을 쏟곤하여 에너지 보충이 더 긴요한데도 잘 먹지 못하면 생병이 날 수가 있다. 닭백숙 같은 건 원래 이래서 생긴 여름철 별미다. 수박도 충분한 수분을 섭취토록 조물주가 인간에게 계절따라 선물한 여름 식품이다.
입맛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수입 식품의 범람은 뭘 만들어도 예전 맛 같지 않다. 우리 몸엔 우리 농축산물이 좋다는 ‘신토불이’를 마다 할 입맛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 것을 먹고싶어도 웬만한 건 중국산 등 수입품 투성이다.
국산이라도 그렇다. 예를 들어 상추도 앙증스럽고 파란, 그런 토종 상추가 아니고 널따랗게 퍼진 외래 품종 씨앗의 상추는 국내서 생산했어도 완전 국산으로 보기 어렵다.
닭도 놔먹여 벌레 등을 잡아먹지 않고, 돼지는 구정물을 먹이지 않고, 소는 여물과 풀을 먹이지 않고 모두 배합 사료만을 먹여 키우니 토종이라도 옛 토종맛이 날리가 없는 것이다.
농축산물만이 아니다. 생태계 환경은 절묘하여 같은 바닷물 속에서 나는 생선 등 해산물도 국산과 수입품이 다르다. 가령 국산 고등어는 옆구리의 비단 무늬가 선명하고 구울 땐 비린내가 나도 먹을 땐 비린내가 없고 쫄깃 쫄깃하다. 이에 비해 수입 고등어는 옆구리 얼룩 무늬가 희미하고 구울 땐 비린내가 안나도 먹을 땐 비린내가 나고 푸석푸석하다.
그러나 뭐든 먹지 않고는 장사가 없다. 아무리 입 맛이 없어도 먹어야 힘을 쓴다. 여름철 더위에 지쳐 보약을 먹기 보다는 국산이든 수입품이든 우선 뭐든 잘 먹는 것이 더 좋은 보약이다.
약학박사인 홍문화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래서 영약보다 식보를 으뜸으로 꼽은 것은 새겨 들을만 하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약은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모든 음식의 색깔은 그러니까 빨간 토마토는 빨간 간에 좋고, 검정 콩은 검은 쓸개에 좋고, 돼지고기 흰 비계는 흰 색깔의 장에 좋다는 등 음식마다 음식 색깔 따라서 맞는 오장육부에 도움이 간다는 속설이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다 잘 먹게된 것은 순전히 친정 어머니 덕분이다. 설사 맛이 덜한 음식일 지라도 맛있게 먹는 것 역시 어머니때문에 생긴 식성이다.
‘여자는 고루 고루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어릴 적에 귀에 못이 배기도록 들은 어머니 말씀이다. 여자가 먹기 싫은 음식이라고 안먹고 편식을 하면 나중에 시집가서 남편과 자식 등 가족들 특히 남자들이 제대로 못먹는다고 늘 타일르곤 하셨다. 이렇다 보니 처음엔 먹기싫은 것도 자꾸 오랫동안 씹으면 그런대로 맛을 알게 되는 습성이 생겨 지금은 쓰디 쓴 우황청심환을 먹는데도 맛있게 먹는다는 우스갯 소릴 주위 사람들로부터 곧잘 듣곤 한다.
입 맛이 없다고 안먹으면 더욱 입 맛이 없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면서도 잘 고치지 못하는 것은 생활의 습관 탓이다. 병원 신세를 지는 환자의 병은 물론 의사가 고치는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환자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 것처럼, 더위를 이기기 위해선 뭐든 잘 먹는 것도 본인 스스로가 마음 먹기에 달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더위를 피해 산이나 바다로 가는 피서법도 좋지만 입 맛을 잃지 않도록 잘 먹는 식보야 말로 더위와 맞싸워 이기는 최고의 납량법이다.
가족들의 건강을 돌보는 식보를 위해 더욱 세심한 주부들의 손길이 아쉬운 계절이다. 우리 모두가 입맛을 잃어 건강을 잃는 일이 없도록 잘 먹는 지혜로 이 여름 한철을 건강하게 보내면 좋겠다.
/이지현.(사)한길봉사회 경기도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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