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문세가

권문세가엔 사람들이 들끓게 마련인 게 자고로 사람이 사는 세태이긴 하다. 조선시대 연산조의 권신 임사홍 집이 그랬고, 자유당 정권 때 이기붕 집이 그리하여 세인들은 서대문에 있는 그의 집을 가리켜 ‘서대문 경무대’(청와대)라고 하였다. 하지만 드물긴 했으나 그렇지 않은 권문세가도 더러 없진 않았다. 조선시대 세종조의 황희는 영의정 자리에 있었으나 그의 초가집에는 평소 청탁배들이 감히 근접을 못했을 만큼 청렴하였다. 이처럼 성품이 관후정대하여 정승만도 무려 24년을 지내는 장구한 벼슬살이로 네 임금을 섬길 수 있었다.

역시 자유당 때 외무부장관 등을 지낸 변영태는 청렴강직하여 외국 출장을 다녀와서는 근검절약하여 남긴 출장비를 국고에 반납하곤 했다. 날마다 운동삼아 아령을 했던 그가 외국에 나갈 땐 짐이 무거워져 운임으로 공연히 출장비가 더 든다며 비서가 짐 보따리에 챙겨 넣은 아령을 공항에서 끄집어낸 일화가 있다. 성품이 이토록 깐깐하여 그의 집엔 아예 잡인들이 들지 못했다.

그러나 권문세가를 찾는 세태 중엔 그 당사자 뿐만이 아니고 권문세가의 사돈네 팔촌까지도 찾아 다니는 더욱 못된 세상 인심도 또한 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 집 앞에서 걸핏하면 농성하곤 하는 민원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마을 주민들이 민원들인에게 자제를 호소했다고 한다. 어느 버스 주주들이 회사내 갈등을 해결해 달라며 한 달 남짓이나 농성하고, 재건축 문제를 둘러싼 부산 아파트 주민 90여명이 농성을 한다니 마을 사람들도그렇지만 건평씨도 참 딱한 입장이다. 민원인들은 건평씨 집을 권문세가로 보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대통령 형님이면 형님이지 회사내 분쟁이나 재건축 같은 문제를 무슨 수로 해결해 달라는 것인지 민원인 그들부터가 크게 잘 못 됐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일찍이 권문세가나 그 친인척들의 처신에 더욱 조신을 설파한 선현들의 경구가 있었던 것 같다.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