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녘에서 결핵환자들을 돌보며 수행하시는 한 수녀님으로부터 꽃씨와 함께 정 깊은 편지를 받았다.
“지난해 유난히도 곱게 피어 있던 카밀레 꽃이 작고 향기가 좋아서 몇 송이 씨 맺을 때부터 목사님 생각을 했습니다. 햇볕 잘 드는 곳에 묻어두시면 예쁘게 꽃피어 목사님께 웃음을 드릴 겁니다. 꽃이 작을수록 향기가 좋아 유럽에서는 차와 미용, 의약품으로 사용하지요”
자잘하게 피어있는 보라빛 카밀레 꽃 사진과 꽃씨를 번갈아 보며 웬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환한 기쁨과 희망이 몸 속 깊숙이 퍼져 가는 듯 했다. 꽃씨를 심고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마음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건 없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신문에서 보았던 한 이라크 여인의 말이 떠오른다. “폭격이 끝나자마자 나는 정원으로 나가 꽃을 심었습니다. 이것이 내게 큰 위로가 되거든요…. 어젯밤 공중폭격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갑자기 꽃을 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웃 화원에서 꽃을 사다가 정원에 심었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바그다드에 야만적인 폭격이 지나간 그 폐허 위에 꽃모종을 심는 그 여인의 모습이 가슴 저리게 아름답고 거룩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보다 더 위대한 평화의 몸짓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인간의 따스운 가슴과 영혼의 진실, 사랑의 힘이 무기의 힘과 전쟁의 광기를 몰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평화의 꽃씨를 품고 그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면 이미 그 기다림 속에 평화는 와 있게 된다.
봄꽃들이 여기저기서 우우거리며 피어나고 있다. 허나 그 봄을 느끼지도 못한 채 혼돈과 갈등, 분열과 싸움으로 일그러진 우리 삶의 자리에 묵묵히 사랑과 평화의 꽃씨를 심는 사람이 그리워진다. 오늘은 남녘에서 보내 온 꽃씨를 내 아이들과 함께 심으며 봄빛을 한껏 느끼려한다.
/장병용(수원등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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