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미국의 敵

부시의 대이라크 단독 개전 선언은 패권주의의 극치다. 유엔의 승인이 없어도 공격하겠다는 것은 ‘패권주의’ 외의 다른 말로는 설명될 수 없다. 미국의 역사학자 제임스 같은 이는 패권주의를 제국주의로까지 빗대어 반미의 세계적 확산은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연상케 한다면서 ‘미국 제국주의’의 몰락 가능성을 예고 했다. ‘선제공격이라는 새 군사 독트린, 대테러전의 확전과 같은 부시 행정부의 과격한 일방주의가 초래한 위기가 장차 제국 해체의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미국 법원은 테러와의 전쟁 빌미로 인권 침해를 일삼는 행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소신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트라이브 하버드대 법대 교수와 다이큐스 버몬트대 법대 교수 등은 이런 사법부의 조치를 지지하고 나섰다.

백악관은 지난해 7월 ‘세계공보국’을 신설했다. 미외교협회(CFR)가 23개국에서 조사된 반미 감정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함에 따라 백악관이 이미지 개선책으로 설치했다. 그러나 ‘미국이 오만하고 위선적이며 타국을 경시한다는 인식이 서유럽으로부터 극동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촌에 퍼져있다’는 CFR의 보고서 내용은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다. 9·11 뉴욕 테러로 훼손된 미국의 자존심을 일거에 회복하려는 부시의 강공 일변도는 되레 미국의 처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세계 40여국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거나 군사기지 사용권을 갖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두드러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부시에 이르러선 ‘내 편을 들지 않으면 적’이라는 방자함을 공공연히 내비치는 지경이 됐다. 그러나 미국이 무서워해야 할 적은 이라크나 북이 아니다. 이라크가 미국의 공격으로 박살이 난다 하여도 지구상에서 미국의 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레닌의 혁명은 실패한 정치로 끝났지만 마르크스 이론은 아직도 살아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큰 적이다. 퍼거슨 옥스퍼드대 교수는 ‘자본주의의 전형인 미국에서 불평등이 뚜렷이 늘어나고 세계의 상품, 노동, 자본시장이 현저히 통합된 점에서 마르크스 이론은 아직도 유효하다’면서 ‘마르크스는 예언가로는 빗나갔지만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빛을 뿜는다’고 말했다.

공산주의는 이미 끝났다. 중국이나 북이나 쿠바 그리고 베트남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닌 완전히 변질된 수정주의다. 북은 김일성 주의다. 공산주의의 몰락은 인간의 성품을 부정하여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마르크스 이론의 망령은 늦어도 금세기 중반이면 ‘신공산주의’를 태동시킬지 모른다. 세계 재편의 이같은 과정은 필연적으로 격동과 혼란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같은 현상은 미국의 오만과 비례한다. 부시같은 사람이 미국을 오래 주도하면 신공산주의의 태동은 더 빨라질 수가 있다.

러시아에서 불고 있는 스탈린 열풍은 바로 이같은 징후의 하나다. 수백만명을 강제 이주 시키고 1천만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몬 독재자를 많은 러시아인들이 전기출간 특집방송 등을 통해 추앙하는 것은 참으로 괴이한 기현상이다. 이런 심각한 현상이 미국을 견제하였던 옛 소련에 대한 향수와 무관하지 않는 것을 부시는 책임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시가 오만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겪는 테러의 공포가 지금같진 않을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말기에 북측과 시도했던 포괄적 협상이 결실됐다면 지금같은 위기는 겪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세계질서의 미국 주도에 이유가 없진 않다. 만약 미국의 힘이 붕괴되면 지구촌은 문명충돌의 심화로 전국시대화 할 가능성이 짙다.

문제는 패권주의 의식이다. 부시는 오만과 독단과 오기를 버리는 것이 진정 세계 평화를 위하고 자국의 번영을 위하는 길임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좀 늦긴했으나 아직도 그리 늦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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