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쓰레기와 시민정신

입식 주방과 함께 가스 연료가 대중화하면서 연탄 쓰레기가 사라졌다. 연탄이 주연료로 쓰일적엔 연탄재가 쓰레기의 주종을 이루었다. 연탄재 쓰레기는 정말 골칫거리였다. 잘못하면 깨지곤하여 엉망이 되기도 했지만, 겨울철 같으면 아궁이마다 두어개씩 나오는 여러 아궁이 것을 다 들고 쓰레기차에 나르는 주부들의 고역은 정말 힘든 것이었다.

지금의 쓰레기는 재활용품을 고르고 나면 종이류가 대부분이다. 연탄재처럼 힘들게 들고 나가는 것도 아니다. 쓰레기 비닐봉지에 담아 집앞에 놔두면 쓰레기차가 실어간다. 이토록 손쉬운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비규격 봉지에 가득히 담긴 쓰레기가 터져나와 자기 집앞에서 마구 뒹굴어도 방관하는 것을 자주 본다. 심지어는 남의 집 앞이나 골목길에 내다 버리기도 한다. 이래서 살벌한 문구가 적힌 경고판이 여기저기 나붙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비규격 봉지에 담은 쓰레기를 청소차가 수거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버리는 사람들에게 있다. 쓰레기를 많이 내면 내는 것만큼 처리비용을 더 부담하는 쓰레기 종량제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이 좋은 제도가 실시된 이후 대체적으로 골목길 청소가 사라진 것은 유감이다. 이웃과 함께 사는 골목을 쓸고나면 쓰레기를 자기돈 들여 규격 봉투를 사서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골목길 자진 청소에 노력부담만 하면 됐지만 이젠 버리는데 드는 돈까지 자진 부담해야 하므로 동네 독지가가 아니면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을 안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골목 청소가 잘 안되고 있는 판에 자기집 쓰레기 하나 제대로 버리지 않아 골목을 더 어지럽히는 것은 시민정신의 반역이다. 쓰레기 봉투값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시민생활의 기본이다. 정 부담이 되면 쓰레기 봉투값을 아낄 생각을 말고 쓰레기 배출을 줄일 생각을 해야한다. 봉투값 얼마 때문에 쓰레기를 아무 봉지에나 담아 두리번거리며 길거리에 몰래 버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자신의 아이들이 본다면 어떻게 여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설령 아무도 못보았다손 치더라도 인간에겐 쓰레기 봉투값과 바꿀 수 없는 기본양심이란 게 있다.

청소행정에는 아직도 개선돼야 할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긴 있다. 하지만 쓰레기 무단투기를 일삼는 시민이 많으면 많을 수록이 개선은 요원하다. 시민생활의 기초 질서를 파괴하는 쓰레기 무단투기 행위는 이래서 시민사회의 암적 존재다.

일본의 요코하마에 갔을 때다. 일행 중 누군가가 길가다가 휴지를 무심코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뒤에 오던 승용차가 멈추면서 웬 신사가 내리더니 그 휴지를 줍는 것이었다. 그 일본 사람은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는 좀 민망해 하면서 “휴지가 이렇게 버려지면 시민이 세금으로 내는 처리 비용이 더 들어서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시민정신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일본 사람 중에도 휴지를 버리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안버리는 것이 보편화된 시민사회, 이러한 시민정신이 오늘의 일본을 일군 저력으로 생각된다. 쓰레기 무단투기는 비단 쓰레기에 국한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사회, 시민의식을 알아 볼 수 있는 잣대다. 만물이 새롭게 시작하는 이 새 봄을 맞아 연탄재도 없어 버리기 좋은 쓰레기를 제대로 버릴 줄 아는 성숙된 시민정신의 새로운 다짐이 다같이 있기를 바라고 싶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