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雪)에서 무질서와 질서를 함께 본다. 강한 바람에 흩날리며 내려오지만 조용히 내려앉은 모습은 차분하고 평온하다. 바람에 따라 흐트러진 무질서가 결국에는 질서로 다시 나타난다. 이러한 눈의 변신에 착안하여 학계에서는 무질서속에 내재되어있는 정제된 규칙을 찾는 노력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혼돈(chaos)이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연으로 보이는 현상도 적절한 관찰이 가능하다면 비록 정확하게 예측은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해석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스베이가스의 도박에 도전한 혼돈이론가도 있다. 이들은 룰렛 게임에서 바퀴를 돌리는 힘, 바퀴의 기울기와 받는 저항, 공을 던지는 방향과 힘, 파여진 홈 등을 면밀히 관찰하여 공이 떨어질 장소를 예측해주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발가락으로 조작할 수 있는 작은 컴퓨터까지 동원하여 상당한 금액을 벌었다. 카지노와의 마찰로 오래 계속하지는 못하였지만, 예측불가능으로 여겨졌던 게임의 결과를 작은 오차 내에서는 예측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혼돈이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경제분야에서는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눈은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자신을 흩트리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바람에 대항하여 반응하고 그 방향도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은 시인에게는 또 다른 아름다움일 수도 있겠지만, 정책수행자에게는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고 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예상되는 저항을 능가하는 강력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혁신적인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요된 변화를 싫어하지, 변화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즐긴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최근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개혁이나 파격과 관련된 내용들이 변화를 강요하는 외풍이 아니길 바란다. 눈은 스스로 녹아버리지만, 사람은 더 강하게 바람을 대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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