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가난한 이들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임영인 신부(성공회 수원나눔의집 원장)

프랑스 파리를 다녀온 사람은 한결같이 거리에 쓰레기통이 없고 무척 지저분하다는 것에 놀란다. 거리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유명한 백화점에도 쓰레기통이 없다. 아무 곳에서나 쓰레기를 버려 파리 시민은 공공질서의식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판단일 뿐, 가난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큰 돈벌이는 안되겠지만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일자리는 공공화장실 청소, 거리와 공공기관의 청소, 플라스틱·가전제품·폐식용유·음식물찌꺼기 등의 수거 및 재활용하는 영역에서의 일 등 다양하다.

이러한 사회적 배려를 하는 곳은 단지 프랑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 각국은 물론 가난한 제삼세계국가에서 조차도 나름대로 다양하게 ‘사회적 일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회적 일자리’에 대해 인색하다.

‘사회적 일자리’란 단지 가난한 이들이 공공부조를 받으며 노는 것을 못 봐주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고, 노동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에게도 노동의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다. 시장논리에 맡겨도 되겠지만 굳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이 서툴러서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일을 통해서 기회를 주는 것이고 희망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배려를 하는 사회는 그만큼 성숙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사회가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추구한다면, 그리고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가난한 이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격언 중에 ‘낭비 없는 사랑 없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배려가 인간에 대한 사회적 사랑의 표현이라면 그 사랑의 본질은 ‘아낌없는 배려’라는 것을 두고 기억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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