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석(경기대 법학과 겸임교수)
반평생을 학문에 몸담고 있는 나는 늘 학문의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누구나 학문에 있어서 갖가지 방법론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나의 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을 얘기하고자 한다.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3년동안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함부르크시의 택시운전사로 일을 했었다. 그런 연유로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가장 실감나게 읽은 사람은 아마도 내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택시운전사와는 달리 독일에서의 택시운전사는 승객을 기다리는 시간이 거의 일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한가한 직업이어서 나와 같은 그곳의 택시운전사들은 대부분 많은 독서를 하게 되는데 특히 밤근무때에는 더욱 더 한가로운 자유를 갖게 되므로 나는 늘 밤에만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에는 내가 쓰고있던 박사논문의 구성, 풀리지 않았던 문제점, 무엇보다도 나의 주장에 대한 당위성과 창작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실제로 거의 택시안에서 해결되고 결정이 되어짐으로써 오히려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그 일을 나는 기꺼이 해내고 있었다. 개인적인 습성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내게는 두 아이와 아내가 함께 있는 15평 남짓한 기숙사에서나, 수많은 책과 학생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대학의 도서관내에서는 자유로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어두운 도시거리의 택시승강장이나 깜깜한 숲속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릴때면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잘 떠오르면서 모든 문젯거리들이 쉽게 정리되곤 했었다. 해탈을 위해 불교에서 쓰는 방법처럼 그 때 나는 오랜 시간동안 사색을 필요로 하는 화두를 잡고 있었고 그 택시안은 내 화두풀이의 수련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그러한 버릇이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공부의 방법으로는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상에 앉아 남의 글을 많이 읽는 것 보다 오랜시간을 투자해서 정말로 깊게 고민하고 사색하여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산물을 낳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을 한다.
돌이켜 보면 많은 시름속에서 번쩍하이 혜안의 눈이 떠져 그토록 풀리지 않고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을 해결했을 때의 환희에 들뜬 그 수많은 새벽녘, 그때마다 나는 반가운 택시 승객도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곤 하던 일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또 작품다운 논문을 쓰려면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가 택시운전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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