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山
식량(食糧)과 양식은 같은 말이지만 전래의 우리 말은 양식(糧食)이다. 속담에 ‘양식없는 동자(밥짓는 일)는 며느리 시키고, 나무없는 동자는 딸 시킨다’라고 했다. ‘식량없는 동자…’라고는 안했다. ‘식량’이란 원래 일본 말이다. 그런데도 ‘식량’으로 보편화 됐다. 식민지문화의 유산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새삼 느낀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일제문화 잔재의 언어를 우리 말로 재정립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된다. 이런 일제언어는 의외로 많다. 예컨대 ‘채소(菜蔬)도 그렇다. 원래 우리 말은 ‘소채(蔬菜)다. 조선조말 1909년 장지연(張志淵)이 농서로 저술한 책 이름이 ‘소채재배전서’로 소채라고 했지 채소라고는 안했다.
소채엔 산나물, 즉 산채는 포함되지 않는다. 농사로 재배하는 나물류를 소채라고 한다. 약 60여가지가 있다. 고유의 소채도 있지만 마늘, 무, 배추 등은 중국을 통해 들어왔고 샐러리, 결구상추, 꽃양배추 등은 조선조 후기 서양에서 들어왔다. 소채는 그 자체가 건강식품이다. 동의보감은 몸의 부기를 빼는덴 늙은호박이 특효한 것으로 적고 있다. 곡류, 생선류, 고기류는 산성식품인데 비해 소채는 거의가 알칼리성식품이다.
혈액의 산성화를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소채를 섭취해야 한다. 또 무기염류의 주요 창고다. 일상의 식생활에서 모자라기 쉬운 무기염류, 칼슘 철분 등을 공급해 준다. 신체의 발육이나 건강에 없어선 안되는 각종 비타민 또한 풍부하다.
요즘은 소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재배방법의 발달로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다 좋은데 농약투성이의 소채가 범람해 소채의 맛을 잃게 하곤 한다. 서울 가락시장 등 대형 유통센터에서 나온 소채류 등에서 잔류 허용치가 초과된 상품이 또 대량 발견됐다고 한다. 깻잎은 26.8%, 상추는 13.3%, 쑥갓은 9.1%, 시금치는 8.0%, 취나물은 7.6%가 농약투성이었다는 것이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허용치의 몇배를 초과하는 농약소채가 검출되기도 했다. 겉치레 상품성을 살리기 위해 농약을 남용하기 때문이다. 노환으로 고인이 된 어는 재벌 총수는 생전에 벌레 먹지않은 소채는 “벌레가 못먹었는데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며 마다하고 벌레 먹은 소채만 즐겼다는 일화가 있다. 지나치게 윤기가 나는 것은 농약의 중금속이 찌든 것으로 보아야 한다. 푸성귀다운 때깔, 벌레 먹은 남새 등 소채다운 소채를 찾기가 힘들다. 그 좋은 소채 하나를 마음놓고 먹을 수 없는 세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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