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운동회
淸河
우리나라의 운동회는 1896년 5월2일에 영어학교(英語學校)에서 평양의 삼선평(三仙坪)으로 소풍을 가 영국인 교사 허치슨(Hutchison)의 지도 아래 ‘화류회(花柳會)’라는 운동회를 열었던 것이 시초가 된다. 당시의 경기종목은 300·600·1,350경주와 공던지기·대포알던지기·멀리뛰기·높이뛰기·이인삼각·당나귀달리기·동아줄끌기(12인조) 등이었다.
1905년 5월20일에는 신흥사(新興寺)에서 황성(皇城)기독청년회가 최초의 운동회를 개최하였으며, 1906년 6월10일 대한체육부 주최로 영도사(永道寺)에서 최초의 민간단체 주최로 운동회가 치러졌다.
학교 또는 일반단체 등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기나 놀이를 하는 운동회는 체육을 통하여 친선과 우의를 다졌다. 특히 학교에서는 1년중 가장 중요한 행사의 하나였다. 운동회는 학생은 물론 가정이나 지역사회의 단합과 유대를 도모하였다.
학생들은 평소 쌓고 닦은 운동·유희 등의 학습결과를 가족과 이웃들 앞에서 자랑하였으며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들의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을햇볕에 얼굴 타는 줄도 모르고 운동장에서 열심히 지도했다.
운동회는 승부나 기록을 중요시하는 스포츠경기와는 성격을 달리하여 무엇보다 전원이 참여하는 공동체의식을 심어 주었다. 대개 가을에 열리는 학교운동회는 현대에 들어와 청백전의 대항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도 유희·각종 경주·줄다리기·리듬운동·기마전·포크댄스·민속춤·단체경기등 다채롭게 진행된다. ‘사제 함께 달리기’ 같은 경기로 교사나 학부모, 지역사회의 주민들을 참여시켜 즐거움을 더했다.
예전에는 학교운동회 날은 마을 잔치날이었다. 학부모들이 응원할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운동장 나무그늘에 돗자리를 깔아 놓기도 했다. 운동회날은 학생들이 주인공이어서 용돈도 넉넉히 주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장만했다. 만국기가 운동장 하늘에서 펄럭이면 아이·어른 모두 마음이 설레이곤 했다. 이렇게 추억이 깃든 운동회가 요즘 규모가 작아지거나 점점 없어져 간다고 한다. 교실을 증축하여 체육수업도 못할 정도로 학교 운동장이 좁아지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시골학교에서 만이라도 가을 운동회가 계속 열려 추억을 연결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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