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같은 신문

松竹같은 신문

淸河

“ (전략) 이제 6백만 도민은 앞으로 전개될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우리 도의 참모습을 조명해줄 새로운 신문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역사회의 알찬 건설과 문화창달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신문, 정의롭고 공정한 신문을 만들어야할 책무를 절감해 왔습니다. (중략) 우리는 앞으로의 민족사를 위한 등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자원하며 경기일보를 자유민주 언론의 공기로 내세우고자 합니다.(후략)”

1988년 4월 경기일보 창간발기위원 일동이 공표한 ‘창간취지문’의 일부다. 1988년 8월8일자로 발행한 PR판 1호 1면에 게재됐다. ‘도민이 모여 도민을 위해 도민이 만드는 신문’이라는 기사제목이 눈에 띈다. 첫 PR판 30만부는 도내 전역으로 퍼져 순식간에 동났다. 경기일보 창간기념일을 8월8일로 삼은 것은 PR판 1호를 8월8일 발행한 데서 연유한다.PR판 2호는 8월13일 발행됐다. ‘경기일보사기(旗) 「솔대골」에 드높이 올랐다’가 1면 큰 제목이다. ‘3백여 「京畿가족」 모여 힘찬 출발’이란 제목하에 “「솔대골 」에 경기일보사기가 드높이 게양됐다. 겨레와 영광의 상징인 태극기와 오륜기도 함께 올랐다. 1988년 8월6일 오후 4시, 이 날은 성하를 구가하던 태양도 흐뭇했으리라. 숨가쁘게 달리던 발을 멈추고 잠시 땀방울을 닦으며 대견해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솔대골’은 경기일보 사옥이 있는 ‘송죽동’을 말한다. 솔대골은 송죽동의 옛 지명이다.

1988년 8월17일, 지방지로서는 처음으로 CTS방식을 채택, 컴퓨터로 제작한 신문 지령 제1호 창간호가 드디어 나왔다. 윤석한(尹石漢) 초대 대표이사 발행인이 창간사를 통해 ‘경기일보는 공명정대한 사회의 공기(公器)’ 임을 선언했다.

수원시 권선구 매교동 인영약품 건물에 있던 경기일보 창간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의욕을 불태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창간 14주년, 지령 제4270호가 나왔다. 창간사원 중 한 사람인 지지대子는 경기일보 사옥이 건립될 송죽동 203의2 (현 452의1 구 번지) 대지의 ‘터 파기 공사 현장’을 임원들을 따라 둘러 보기도 했다. 동료들과 함께 책상, 의자, 캐비닛 등 사무실 집기들을 사옥에 들여 놓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지금도 근무하는 창간사원들이 있고 고인이 된 사람들은 이따금 추억 속에서 환생한다. 창간 때 부터 계속 구독하는 고마운 독자들도 많다. 독자들과 고락을 함께 하는 경기일보의 미래는 푸르다. 그리고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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