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결과에 책임은 실종됐다. 중국산 마늘수입 자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2000년 한·중 마늘협상 결과가 이 모양이다.
외교부는 ‘가서명 때까지 협의를 거쳤다’면서 ‘후속조치는 농림부 소관’이라고 한다. 농림부는 ‘연장불가 조항이 본문에 없어 몰랐다’며 ‘외교부서 발표안해 문제가 생겼다’고 말한다. 청와대측도 가관이다. 이기호 경제수석은 ‘나도 모른 일’이라면서 ‘대통령도 몰랐을 것’이라고 책임을 내각에 떠민다. 무슨 쇼같기도 하여 웃긴다. 도대체 이런 정부가 또 어디에 있겠나 싶어 나라가 걱정되기도 한다.
국무회의가 있다. 헌법이 정한 심의사항 가운데 ‘중요한 대외정책’, ‘행정 각부의 중요한 정책의 수립과 조정’ 항목은 마늘 협상이 국무회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차관급으로 구성되는 정부위원회의도 있다. 이런 공식 회의에서 거론 됐더라면 부처간에 다른 말이 나올 수 없다. 마늘 협상 은폐의 책임이 실종된 것은 국무회의에서 한번도 논의된 적이 없음을 방증한다. 외무부, 농림부가 서로 나홀로 식으로 얼버무려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마늘협상이 2년 전이었으면 그땐 국무회의가 ‘필기장관’들 이었을 적이다. DJ ‘분부말씀’을 받아쓰기에 급급하느라고 안건 제기를 못했는지 모르지만 뭣을 한 국무회의였는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의 입장이 궁금하다. 어떤 경로로든 보고되지 않았다고는 믿기 어렵다. 설사 보고되지 않았다 하여도 면책될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조직에 의해 투명하게 처리되지 못하고 인치에 의해 은밀하게 처리돼 온 악폐 의 결과다. 마늘협상만이 아니다. 이밖에 예를 들자면 공적자금의 방만한 운용 손실도 마찬가지다.
만약 마늘협상이 잘된 일이라면 지금 서로 ‘내가 한 일’이라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일이므로 ‘난 모른 일’이라고 발뺌하기에 바쁘다. 정말 부도덕하다. 중국은 마늘 재협상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농업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정부가 뭐라고 말 해 줘야 하는데 말할 사람이 없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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