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목욕탕에서 -白山-

오랜만에 동네목욕탕엘 갔다. 전보다 발길이 뜸해지는건 동네목욕탕 뿐만이 아니다. 동네가게, 동네이발소도 마찬가지다. 누군지, 성씨가 뭣인지는 몰라도 서로 낯설지 않아 눈 인사라도 주고받곤 하는 곳이 동네목욕탕 같은데다. 전엔 으레 만나곤 했던 이런 동네사람의 만남도 전 같지 않다. 목욕탕이고 가게고 모든게 다 대형화돼 손님들이 그런 곳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마침 손님도 두어 사람이어서 한적한 가운데 탕속에 몸을 녹이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노인 한 분이 들어 오시더니 다짜고짜로 흙사우나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우나 입구엔 분명히 ‘노약자와 어린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 분은 족히 여든이 가까워 보였다. 기골이 장대하여 젊은 시절 힘깨나 쓰셨을 것 같지만 아무튼 지금은 거의 피골이 상접한 노약자인데도 5분이 지나도 나오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 기억을 더듬컨대 흙사우나 안엔 노인 한 분만이 계시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됐다. 목욕탕안 벽시계는 10분이 이미 지났다. 안되겠다싶어 탕속에서 나와 사우나를 들여다 봤더니 그 분은 눈을 지그시 감은채 윗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지 않은가. 119 구조대라도 부를 심산으로 조바심을 가졌던 게 내심 어이없어 실소를 머금었다. 정말 대단한 체력이었다. 이윽고 사우나에서 나온 건 정확히 15분이 지나서였다.

탕 밖에서 물을 훌쩍훌쩍 끼얹는 그분 곁으로 우정 다가갔다. 말을 걸고 싶어서였다. “어르신 체력이 감축할만 합니다” 돌아보는 노인장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쑥사우나에 들어가 역시 같은 시간을 보내어 또한번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놀란 것은 나뿐이었다. 동네목욕탕 종업원이나 동네목욕탕 손님들은 그 노인장을 이미 잘알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왕따당한 동네목욕탕의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들어 머쓱했지만 그래도 동네목욕탕 인심은 살아 있구나 싶어 흐뭇했다. 동네목욕탕에서 외톨이가 된 것은 나 스스로였지 동네사람들 탓이 아닌 것이다. 오랜만에 동네목욕탕을 다녀 나오는 심신이 그 어느 때보다 날아갈 듯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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