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는 지난 95년12월 경희대 졸업을 앞두고 신생팀이었던 수원 삼성의 창단멤버로 입단하며 수원과 인연을 맺었다.
김병지와 함께 한국 축구대표팀의 주전 수문장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운재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94년 미국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황금기를 누릴 정도로 ‘잘 나가는’ 골키퍼였으나 선수생활을 접어야 할 위기에까지 빠졌었다.
경희대 1학년이던 92년 올림픽대표로 뽑혔던 이운재는 94년 3월 미국과의 대표팀간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가져 95년6월 A매치 데뷔전을 가진 세 살위 김병지보다 1년3개월이나 빨리 두각을 나타냈었다.
이운재는 94년 미국 월드컵때도 주전은 아니지만 대표팀에 차출돼 최종전이었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에 교체투입,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의 격전장인 월드컵 본선무대를 직접 밟아 보기도 했다.
특히 막강 전차군단을 상대로 45분동안 단 한골도 내주지 않은 것은 이운재의 축구인생에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주전 최인영이 35세의 노장이었기 때문에 이운재가 머지않아 대표팀 주전 수문장 자리를 꿰찰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9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수원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무대에 데뷔, 선수생활의 황금기를 꽃피울 준비를 마쳤다.
그러던 이운재에게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간염 판정이 내려지며 선수생활 중단이라는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운재는 줄곧 병상에서만 지내지는 않았지만 운동과 치료를 병행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자주 골문을 비움으로 해서 기량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며 ‘이쯤에서 선수생활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고심하곤 했다.
그러나 이운재는 초등학교 4학년때 무작정 축구가 좋아서 축구부에 가입했던 기억과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던 뿌듯한 느낌을 되살리며 축구화를 벗지 않았다.
그러기를 2년, 마침내 이운재는 병마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98년부터 다시 축구에 전념하게 됐지만 2년여의 병원생활로 많은 것을 잃었고 그중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 자리는 이운재가 잃은 가장 큰 것이었다.
하지만 좌절할 줄 모르는 이운재는 특유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착실히 훈련에 임하며 기량을 회복했고 결국 지난해 1월 히딩크의 인정을 받게 됐다.
이운재와 김병지의 주전 골키퍼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비록 김병지가 특유의 순발력과 튀는 플레이로 이운재보다 많은 평가전에 나서고는 있지만 월드컵 본선무대에 누가 주전으로 나서느냐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운재는 튼튼한 기본기와 기복없는 안정성을 바탕으로 주전 골키퍼가 되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이운재는 주전이 되지 못하더라도 주어진 여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주어진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정민수기자 jms@kgib.co.kr
<프로필>프로필>
▲생년월일=1973년4월26일
▲체격조건=182㎝/82㎏
▲출신학교 및 클럽=청남초-대성중-청주상고-경희대-수원 삼성
▲국가대표팀 데뷔=94년3월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
▲대표팀 경기출전 횟수=31경기(34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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