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경협추진 2차회의가 갑작스런 북측 불참 통보로 무산됐다.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는 북측에 끌려가면서 대세를 주도하려 하는 정부 의도를 모르진 않지만 해도 너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수상을 세번이나 지내며 1·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장구한 정치 생활에서 언제나 위기를 찬스로 역전시키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였다. 동양의 고담으로는 ‘홍문의 잔치’가 있다. 항우의 군사 범증은 유방을 죽이기 위해 잔치를 빙자하여 초대했지만 유방의 군사 장량은 이를 알고도 참석해 기지로 주살을 모면했다. ‘장계취계’라는 말은 상대의 계략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계교로 중국 삼국시대에 있었던 고사성어다.
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방북, 남북의 대화 물꼬를 텄다고 호들갑을 떤지 불과 한달만에 또 꼬이고 말았다. 북측의 회담 거부 이유는 최성홍 외교통상부장관이 방미시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회견(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공책이 먹혀든다) 내용을 내걸고 있지만 이는 지난달 23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땐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회담 거부의 빌미로 삼는 것은 애당초 회담을 할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남북경추위가 무기연기 됨으로써 기대를 걸었던 경의선 개통, 금강산댐(임남댐) 임진강댐(4월5일댐)으로 인한 홍수 및 갈수 대책 등도 무작정 또 북측 처분만 기다리는 입장이 됐다. 남북대화의 재가동은 북측에 식량과 비료를 주는 것으로 시작됐던 게 겨우 이산가족 상봉, 그것도 북측 요구대로 장소를 금강산으로 양보해 만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회담 거부에도 예의란게 있다면 있다. 여유있게 알리지 않고 회담에 임박, 돌연 일방 통고 함으로써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에 다 마련한 통신등 준비시설물을 철수해야 했던 이쪽 입장은 체면이 말이 아니다.
위기를 찬스로 만들지도 못하고, ‘홍문의 잔치’처럼 낚싯밥만 떼이고, 번번이 장계취계 당하다 못해 이젠 굴욕까지 감수해야 하는게 남북관계에서 보이는 정부 처사다. 그래도 인내를 해야 한다면 해야 하겠지만 도대체가 뭣하나 미더운 것이 없다. 혼자 장구치고 북치다가 제풀에 나가 떨어지는 격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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