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성경 ‘마태복음’에 ‘포도원의 일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포도밭 주인이 일꾼을 채용했는데, 그때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을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똑같이 1데나리온(로마의 은화 단위)의 품삯을 지불했다. 하루종일 일한 사람이 불평을 토로했다. 주인은 “여보게 이 사람, 자넨 나하고 하루에 1데나리온씩 약속을 하잖았는가. 자네 임금이나 찾아 가게. 난 오늘 마지막에 온 사람한테도 자네하고 똑같이 지불하고 싶을 따름일쎄.”라고 말했다.

물론 여기에서 ‘마지막에 온 사람’이란‘한 시간 일한 사람’을 가르킨다. ‘데나리온’은 당시의 최저의 임금이라고 한다. 예수는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최저임금제를 가르친 것이다.

노동자의 생활보증을 염려하면서 노동의 정신적 의의를 가르쳤고, 노동자는 처음부터 그 노동에 상당한 전보수(全報酬)를 요구하기에 앞서, 보수 이상의 것을 해야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특히 한시간이라도 일하게 한 포도원의 일꾼은 소위 실업자를 위해 직업을 알선해준 것이다. 거기에도 하나의 현대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다.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다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노동을 통하여 자신이 높여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무엇인가 이익을 주어야 한다. 노동이란 인간형성의 뜻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똑같이 임금을 지불한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예수의 사랑’이지 어느 누구, 계층을 편애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일터를 준 것이다. 처음엔 불평을 토로했으나 나중에 포도밭 주인의 뜻을 읽은 일꾼 역시 동료애를 느끼고 이해한 것이다. 근로자들의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계속되는 오늘날의 노동현장을 본다면 예수는 어떻게 말씀하실런지 궁금하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마태복음 20장24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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