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기대주’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딴죽부터 걸자면 제목부터 심상치않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아니면 ‘피도 눈물도 없이’라니. 젊음의 패기와 혈기로 보기에는 제목이 주는 위압감이 너무 크다.
죽기살기로 덤비는 사람처럼 갈 데까지 가보자는 감독의 비딱한 심기가 느껴지는 탓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이런 식이다. 액션느와르를 표방한 신작으로 오늘 개봉되는 ‘피도 …’는 뒷골목 인생들의 아귀다툼과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세계를 그린다.
철조망 안에 갇힌 개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투견장이 무대. 물지않으면 물려 죽는 개싸움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빗댔다니 그 처절함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서로 속고 속이는 치졸한 싸움과 양육강식만 있을 뿐이다.
눈 밑에 난 상처를 가리기위해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여자 수진(전도연). 북어패듯 밤낮 자신을 두들겨패는 투견장 건달(정재영)에게 지금은 발목이 잡혀있지만 언젠가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하는 게 그녀의 꿈.
왕년에 뒷골목에서 한가닥했던 경선(이혜영). 도망간 남편이 진 빚을 갚기위해 택시운전을 하지만 술취한 남자 손님들의 성희롱과 거머리처럼 따라붙는 악덕 사채업자의 등쌀에 편할 날이 없다. 어딘가에 있을 딸을 찾아 함께 사는 게 그녀의 소망.
차 사고를 계기로 우연히 알게 된 두 여자는 투견장 판돈이 든 돈가방을 훔쳐 달아날 모의를 꾸민다. 허나 그 바닥 사람들을 속이기가 어디 쉬운가. 곳곳에서 제2, 제3의 모의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돈가방을 둘러싼 쟁탈전이 시작된다.
‘피도…’는 전작 ‘죽거나…’보다 한층 세련되고 매끈해졌다. 전작에서 보이던 치기어림을 접고 능수능란함과 재기발랄함을 그 자리에 채워넣었다. 악에 받친 인간들의 피비린내나는 싸움과 욕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면서도 불쾌감을 주기보다 흡인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고개를 돌려야 할 정도로 잔인한 액션 장면에서 흥겨운 음악이 흐른다거나 느닷없이 정지 화면과 슬로우 모션이 튀어나와 감정의 강약 조절해 준다. 비장감 넘쳐야할 곳에서 돌연 유머가 등장하는 식이다. 상영 시간 내내 안쓰러움과 웃음,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된다.
특히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는 치밀한 구성과 거듭되는 반전에서는 감독의 영민함마저 느껴진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공이 컸다. 서로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인, 톱스타 전도연과 중견 이혜영을 내세워 남자들과 육탄전도 마다않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선보인다.
7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이혜영의 카리스마와 ‘공포택시’ ‘킬러들의 수다’에서 주로 코믹연기를 선보였던 정재영의 혼신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여기에 임원희, 류승범, 크라잉넛과 신구, 백일섭 등 신·구세대 연기자들이 총출동한 ‘피도…’는 캐릭터 열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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