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선 555리 철마는 달리고 싶다(22)

22 에필로그

기차가 있는 곳에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사는 곳에 기차가 있다. 기차가 가는 곳에 사람도 간다. 기차는 삶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다. 기찻길을 통해서 물산이 오가고 인걸들이 오간다. 인간이 철로부터 받은 가장 위대한 선물이 기차의 탄생이다. 가차는 문명을 낳는 산실이다. 기차에 의해서 탄생된 문명은 다시 기차에 의해서 성장하고 확산된다. 기차는 인류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 기차는 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며 막힌다고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반세기전 경원선 밤기차의 침대칸에 몸을 싣고 발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금강산과 원산 해수욕장을 오갔을 장안의 사대부들을 생각해본다. 정말로 환상적인 기차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자꾸만 안타깝게 느껴진다. 경원선 철길따라 555리, 서울 용산역에서 원산역까지의 경원선 횡단 여정이 모두 끝났다. 짧은 6개월이었지만 10년의 짐을 벗는 기분이다. 어느새 나는 6개월동안 철도에 미쳐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열차를 기다리고, 열차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도에 관한 책이면 밤을 낮삼아 달려가 모았다.

소요산역사를 허가없이 찍다가 역장하고 한바탕 싸움을 벌린일, 덕정역에서 달려오는 기차의 정면에서 사진을 찍다가 열차기관사가 기겁을 하고 경적을 울려대고 덕정역 역무원들이 뛰어나와 ‘당신 죽을려고 그려느냐고?’ 책망하던 일, 통일의 분단을 체험시킨다고 학생들을 데리고 남한의 최종단역인 신탄리역의 ‘철마는 달리고 싶다’ 표지판 아래에서 열강 하던일까지도 이제는 아련한 저편의 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경원선 555리 철마는 달리고 싶다’를 연재중에 만나 현지 가이드를 여러번 해준 연천군청 박화봉 주사를 비롯하여 국내 철도에 관한 자료를 내 일처럼 알고 모아준 이한웅 국회보좌관, 외국 각국의 철도 책자를 사다준 이인화 선생, 그리고 취재길 길동무가 되어준 제자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준 각 역의 역무원들 등 고마운 얼굴들을 잊을 수 없다.

기차역 그 자체를 단순히 그리려 하지 않고 그 기차역을 코드로 하여 그 주위에서 삶의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평범한 민초들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그 지역만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간적 특성을 역사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글로 남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천학비재하여 졸작이 되고 말았다. 4년에 걸쳐 숱한 애환속에서 험난한 추가령 협곡에 건설한 경원선 철도의 진면목을 어찌 짧은 6개월 동안에 다 나타낼수 있는가? 그것도 반쪽은 오갈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 했다. 다만 최선을 다했다. 글을 연재하면서 너무나도 아쉬웠던 것은 왜 경원선 열차는 신탄리역의 ‘철마는 달리고 싶다’ 표지판 아래서 더이상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오던 길을 따라서 남쪽으로 회차하는가였다.

지난해 6월 15일 남북한 두 정상이 철도복원을 약속했기에 아득할 것 같지만 머지않아 끊어진 경원선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그 경원선을 타고 계속 북상하면 북한의 두만강역을 지나 러시아의 핫산역을 거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TSR)와 연결된다.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인 러시아호의 4인용 쿠페 침대차에 느긋하게 몸을 싣고 북한, 러시아를 거쳐 유럽의 런던, 파리를 여행할 수 있는 날은 가까운 날에 찾아올 것이다. 아니 지금 이순간 우리앞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철의 실크로드가 열리는 것이다. 글로벌 로드(지구길)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유럽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지난 냉전시대에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1936년 7월. 손기정 선수는 부산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경성, 평양, 신의주를 거쳐서 만주를 지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서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불과 66년 전만해도 이땅에는 모스크바로 통하는 대륙횡단 철길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한국철도는 지난 100년 동안 따뜻한 마음의 고향이며 서민의 발이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이것을 다시 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21세기 역사적 소명인 것이다. 철도는 이제 단순한 선이 아니라 반세기 동안 단절된 민족의 한을 잇는 통일 사신이다. 철의 르네상스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대륙에 부속되어 있는 반도국임에도 불구하고 남북분단에 의해서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민족은 발전이 없다. 나노시대에 그러한 민족은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이제 남과 북은 ‘한민족의 공존, 번영’이란 큰 틀속에서 뭉쳐야 한다. 우리에게 태평양 시대의 주인으로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역사적인 ‘철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비좁은 땅에서 남과 북이, 동과 서가 대립과 반목으로 날을 지샐때가 아니라 힘을 합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할 때 이다. 남은 북을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북은 남을 통하여 태평양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계절 감각으로는 아직 이르지만 취재길 어려울때마다 필자가 즐겨 부르던 김완기의 ‘가을엔 교외선을 타자’란 시로 그 동안 저의 글을 애독하신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등황색 햇살 뜰에 가득하고/노란 거리 가슴에 밀려오면/우리 나가자, 간이역으로/실바람 흐르는 강물따라/들판을 지나는 흰 구름 되어/우리 달리자, 햇살을 타고/주머니엔 하모니커/배낭엔 화구와 김밥 두어 줄/그리고 과일 한 봉지/가을엔/가을엔/교외선을 타자.

끝으로 글이 연재되는 동안 뜨거운 관심을 보여준 철도 관계자를 비롯한 열차마니아 여러분과 보잘 것 없는 글을 14주년 창사 특집 기획물로 연재하도록 많은 지면을 배려해준 경기일보사에 작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벅찬 마음으로 글을 맺습니다.

필자: 김 추 윤 (신흥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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