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얼굴

포승줄과 수갑에 묶인 폭력배들 모습을 얼핏 보면 깡패같지 않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가끔 보는 장면이다. 고개를 푹 숙인게 마치 다 죽은 시늉이다. 그러나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의 모습, 예컨대 사람을 생매장 하거나 돈 독촉같은 짓을 할 땐 험상궂은 저승사자나 야차보다 무서운 공포감을 준다. 게이트 관련의 고관대작들 역시 텔레비전 화면에 드러난

얼굴도 그렇지만 권력을 등에 업은 친인척들 얼굴을 볼 때 또한 역겹다. 혐의사실을 부인하던 뻔뻔스런 모습이 종내엔 풀죽은 모습이 되곤 한다.

이희호 여사의 조카 이형택씨가 보물발굴 사업에 관련, 특검에 의해 구속되고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씨가 사채업자의 세금을 감액해 준다며 1억원을 받고 김정남 전 국세청장에게 선처를 다짐 받는등 여죄가 속속 드러나 출국중인 안정남씨에 대한 조사가 주목된다. 이형택씨나 신승환씨는 누굴 믿고 행세했으며, 무소불위의 권능 아닌 권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들이 범죄행각을 벌일 땐 또 얼마나 거만하고 위세가 당당했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안정남씨는 이밖에 강남의 부동산 축재에 의혹을 안고 있으면서도 ‘죽으면 태극기로 관을 덮고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달라’는 등 별의별 코미디를 다 연출했다.

장쩌민 중국 주석은 최근 당정 지도층과 지도층 자제들, 이른바 ‘태자당’의 부패척결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의 엔론 게이트는 백스터 전 엔론 부회장이 자살한 가운데 백악관을 뒤흔들고 있다. 체니 부통령과 부시 보좌진 연루설로 법무부가 엘론의 파산경위에 대한 본격 조사에 나섰고 의회는 백악관을 상대로 소송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1930년대의 알 카포네 같은 시대가 아니다. 주류밀수를 일삼고 ‘밸런타인 날의 학살’등 시카고 거리의 참극을 저지른 ‘밤의 대통령’으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 법망을 뚫고 낮에는 유력인사로 행세할 수 있었던 그런 시대가 아닌 것이다. 비리중에도 가장 타락한 게 권력형 비리인 것은 국가 공권력의 개인적 남용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미국도 권력형 비리 척결에 국가의 중심부가 앞장서고 있는데도 우리 나라만은 발뺌을 하고 있다. 비록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만 저승사자나 야차처럼 공포의 화신이었을 폭력배와 마찬가지로 두 얼굴의 권력형 비리가 더 있어서는 국기가 흔들린다. 막강한 권력을 악용하거나 권력의 후광을 등에 업고 거들먹거리며 범죄를 태연히 저지른 그들의 얼굴을 보며 국민들은 뭣을 생각할까.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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