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이 충무로 최고의 실력자로 떠오른 것은 ‘투 캅스’ 시리즈나 ‘마누라 죽이기’의 성공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탁월한 제작ㆍ투자ㆍ배급능력 덕분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공·사석에서 사장이나 회장, 대표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며 연출에 대한 미련과 애착과 자신감을 감추지 않아왔다.
25일 개봉할 ‘공공(公共)의 적(敵)’은 그가 감독으로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검증하는 시험대이자 야심작이다.
주인공은 시쳇말로 ‘꼴통’ 기질을 지닌 다혈질 형사 강철중(설경구)과 명석한 두뇌의 냉혈한 펀드매니저 조규환(이성재). 둘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끌고나간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어느 여름밤, 주택가 골목에서 잠복근무 중이던 철중은 변의를 참지 못하고 전봇대 뒤에서 볼일을 본 뒤 일어서다가 판초를 걸친 사내와 부딪쳐 넘어진다. 화가 치민 철중은 달려가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치지만 그의 품에서 나온 비수가 눈가를 스치자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인근 주택에서 칼로 난자당한 노부부의 시신이 발견된다. 철중은 노부부의 외아들인 규환을 보고 그가 바로 비오는 날 마주쳤던 사내이자 살인범임을 직감한다. 이때부터 살인의 단서를 찾아내려는 철중과 그를 무력화 시키려는 규환의 본격적인 대결이 불꽃을 튀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두 배우의 연기력. 범죄 덮어씌우기나 마약 강탈 등도 서슴지 않는 악질경찰이 돌연 정의의 화신으로 변모한다는 설정이 다소 생뚱같이 비칠만도 하나 설경구의 사실적인 표정과 말투는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는 이성재의 밉살스런 분위기도 크게 한몫한다.
‘공공의 적’은 모처럼 강우석 감독의 영화를 보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려는 관객도 섭섭지 않게 배려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풍자와 역설적 상황이 빚어내는 ‘강우석표’ 유머는 확실히 오버액션이나 말 장난을 동원한 억지웃음에 비해 ‘본전 생각’을 나지 않게 만든다.
강신일(엄반장)ㆍ이문식(주류업자)ㆍ성지루(정보원)ㆍ유해진(건달) 등 낯익으면서도 이름 귀에 선 조연들의 감초연기도 빛을 발하며, 탄탄한 짜임새로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솜씨도 상당하다.
그러나 결정적 단서를 추적해내는 추리적 요소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어차피 관객들이 범인을 모두 아는 상태에서 너무 일찍 사건의 실마리를 노출시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어쨌든 강감독에게 엄청난 걸작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유쾌하고 뿌듯한 마음으로극장 문을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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