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운드시대 우리농업의 살길

우루과이라운드(UR)에 이은 WTO(세계무역기구) 뉴라운드 협정과 정부의 감산 및 추곡 수매가 동결정책 등 급격한 상황변화로 우리 농민들은 영농의지를 상실한채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최근 전국 각지에서 수매가를 싸고 폭발했던 농민들의 분노도 한풀 수그러들고 추수가 끝난 빈 들녘에선 농민들의 한숨만 들려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농에 대한 우려와 걱정으로 거래가 끊겨 논값이 폭락하고 귀농 급감, 탈·이농 급증 등으로 농촌의 노령화·공동화 현상이 심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고품질 농법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농외소득 개발과 농촌문제의 거시경제적 접근 등을 통해 활로를 찾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편집자주>

우루과이라운드(UR) 때보다 개방화 원칙이 강화된 뉴라운드가 출범함에 따라 우리나라 농업이 과연 시장개방의 파고를 넘어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도하 각료선언문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농산물 수입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장접근의 실질적인 개선과 국내보조의 실질적인 감축’ 원칙을 천명, 상당부분 관세 감축과 국내보조금 삭감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선협상 후대책’이 문제 야기

우리나라는 국제 농산물 협상과 국내 농업정책을 분리해 생각해온 반면 선진국들은 국내 농업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농산물협상에 임해왔다. UR협상으로 출범한 WTO는 국내농업정책에 있어 정부수매 같은 가격지지정책을 줄이고 대신 직접지불제 같은 소득지지정책은 허용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UR 이후 서둘러 가격지지정책에서 소득지지정책으로 전환하는등 발빠르게 대응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UR 이후 2004년 쌀협상에 대배, 국내농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농어촌구조조정기금 42조원과 농어촌특별세 15조원 등 모두 57조원을 투자해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을 벌여왔다.

이 구조개선사업의 목표는 생산성 향상이었다. 쌀 재배농가 규모화로 생산비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었으나 매년 추곡수매가를 올리는 가격지지정책으로 농가들에게 생산비를 낮출 동기를 부여하지 못했다.

게다가 규모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1㏊미만 논농가 비중이 전체 쌀농가의 75.7%를 차지해 여전히 규모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1㏊이상 3㏊미만 농가호수의 비중이 90년대 중반까지 증가하다가 최근에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올해부터 2천여억원의 예산으로 논농업직불제를 도입, ㏊당 농업진흥지역은 25만원, 비진흥지역은 20만원의 보조금을 주기 시작했다.

현재 농업예산에서 차지하는 직불제 예산비중이 우리나라는 2%에 불과한 반면 EU는 70%, 미국은 22%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협상 결과에 따라 국내농업정책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국제협상에 대비해 국내 실정에 맞는 정책을 실시한후 이것이 WTO에서 허용되도록 향후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득지지정책 전환 시급

우리나라 가격지지정책의 핵심은 추곡수매제도다. 국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추곡수매가는 정치권 논리에 따라 98년 5.5%, 99년 5%, 2000년 5.5%, 2001년 4%로 매년 인상돼 수매가에 기초한 쌀시장가격도 계속 올랐다. 그만큼 국내 쌀값과 국제가격의 격차는 커져 쌀의 국제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우리나라의 쌀 농가판매가격은 80㎏ 1가마에 15만9천384원으로 미국산 쌀 3만5천46원, 중국산 쌀 2만8천184원에 비해 각각 4.5배, 5.7배에 달한다.

UR당시 우리나라와 함께 관세화 유예를 인정받았던 일본의 경우 올해 수매가가 86∼88년 평균 수매가보다 16.7% 인하된 반면 우리는 같은기간에 오히려 116% 인상됐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양곡관리법을 개정, 추곡수매가 국회동의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정부수매는 WTO 규정상 감축보조대상이기 때문에 2004년까지 매년 750억원씩 수매금액을 감소해 수매량이 줄어 수급조절 기능도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현재 추곡수매량은 쌀 전체생산량의 15%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UR이후에도 수급조절기능이 약해지는 추곡수매제에 매달려 왔다. 추곡수매제는 진작에 ‘식량안보’를 명분으로 정부가 수확기에 쌀을 시가에 매입, 시가에 방출할 수 있는 ‘공공비축제’로 전환됐어야 했다. 이 공공비축제는 WTO에서도 허용하고 있는 제도다.

추곡수매제가 없어지면 당연히 쌀값은 떨어지고 그만큼 농가소득은 줄어들게 된다. 이런 소득감소분을 직불제 같은 소득지지정책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가 소득보전 공감대 형성

직불제를 통해 농가소득을 보전해주려면 재원이 필요하고 그 재원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농업이 단순히 ‘농산물’이라는 상품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유지와 환경보호, 고용유지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농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가소득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오내원 박사는 “농업을 시장원리에 맡겨 오지에서 농사를 짖는 사람들이 다 나오면 그 지역은 황폐화될 수 밖에 없다”며 “농업은 국토의 형상을 유지하는 중요한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업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효율적인 경영체로서 농업이 발전하는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농산물이 외국 농산물과 가격경쟁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농가에 대한 소득보전과 시장원리를 동시에 적절히 살리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때이다./이관식기자 ks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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