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은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다. ‘백의민족’이라고 하였다. 흰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데서 비롯됐다. 순백의 흰색은 모든 색깔의 근원이기도 하다.
삼백(三白)이란 말이 있다. 음력 정월에 사흘동안 내리는 눈을 일컫는다. 사흘이나 눈이 내리면 세상이 얼마나 온통 순백이겠는가 상상해볼만 하다. 삼백은 또 다른 말로도 쓰인다. 쌀, 누에고치, 목화를 삼백이라고도 한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농산물인 것이다. 산업사회에서의 삼백은 비료, 시멘트, 설탕을 꼽는다. 또는 쌀, 백설탕, 화학조미료의 세가지 흰 빛의 식품을 삼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농경사회 개념의 삼백이 원초적 친근감을 갖는다. 그리하여 쌀, 누에고치, 목화의 명산지를 ‘삼백의 고장’이라고 하였다. 무명베를 만드는 목화, 명주 비단의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 생산은 벌써 사양산업이 된지 오래다. 이젠 쌀마저 증산이 억제되어 농업인들이 가격보장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서는 단계가 됐다.
이처럼 민족의 정서가 담긴 흰색이 부정적인 색깔로 둔갑된 것은 필로폰이 나오면서 였다. 결정성 백색 무취의 이 가공품 분말은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마약류로 개인 및 가정과 사회를 망치는 인류의 공적인 것이다. 공포의 흰색가루가 필로폰인줄만 알았던 것이 미국의 대 테러보복전 이후 탄저균 소동을 빚어 또 다른 백색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탄저병 균이 섞인 흰색가루가 미국의 백악관까지 침투해 미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뿐만이 아니고 서방진영도 백색공포로 전전긍긍 하는 실정이다. 백색공포는 국내에까지 번져 오인신고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생화학 무기의 백색공격은 경계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과잉반응은 되레 공연한 사회혼란의
요인이 되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어쩌다가 티없이 맑고 깨끗한 백색이 저주의 대상이 됐는지 실로 안타깝다. 삼백을 숭상하던 때가 못살았긴 해도 세상 사는 마음은 차라리 더 편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白山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