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를 근거지로 하여 고려말부터 본격화된 왜구의 약탈은 조선초 한반도의 해안지역 전역으로 확산됐다. 조선 세종 원년인 1419년 5월5일과 13일에는 50척 규모의 왜구 선단이 충청도 비인현과 황해도 해주 연평곶을 침략, 약탈하는등 극에 달했다.
세종의 아버지(상왕)로 병권을 쥐고 있던 태종의 주재하에 왜구토벌에 관한 조정차원의 대책논의가 열렸다. 이틀에 걸친 강·온파의 격론 끝에 이종무(李從茂·1360 ∼1425)장군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마도 정벌군’을 편성했다. 정벌군은 한달여 동안의 준비가 끝난 1419년6월19일 병선 227척과 병력 1만7천285명, 군량미 65일분을 싣고 대마도로 출병했다. 조정은 출병에 앞서 대마도에 사자를 보내 약탈자를 체포해 조선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하고 출병 10일전 선전포고에 준하는 대마도 정벌의지를 천명했다.
정벌군은 출동기지 주변 왜인들을 체포해 멀리 보내고 반란 가능성이 있는 왜인 21명은 처형했다. 이와 함께 정벌시 본토방어를 위해 장정들을 예비군으로 차출, 4교대로 경비근무를 시켰다. 이종무장군이 이끄는 토벌군은 별다른 저항없이 6월20일 오전 11시쯤 대마도에 상륙한 후 데려간 왜인을 통해 대마도주 도도웅와(都都熊瓦)의 귀순을 종용했으나 거부당했다. 이에 토벌군은 공격을 개시, 순식간에 129척의 적선을 소각 및 포획하고 가옥 1천939호 소각, 왜구 104명을 죽이고 21명을 포로로 잡는등 전과를 올렸다.
토벌군은 보름동안 대마도에 주둔하는 동안 왜인들의 기습으로 장수 3명이 전사당하는 등 피해를 보기도 했지만 대마도주의 항복과 함께 ‘앞으로 군신의 예로서 섬기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7월3일 거제도로 귀환했다.
작금 미국이 아프간을 상대로 대(對)테러보복전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은 마치 한국이 600년 전 조선 세종 때 있었던 ‘대마도 정벌’과 매우 비슷하다.출병동기와 무력 상황, 테러자 송환 요구 등이 모두 그러하다. 미국이 ‘9·11 동시다발 테러’의 주범이라고 지목하는 빈 라덴은 항복할 징후는 전혀 없고 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 같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부시대통령에게 이종무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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