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동안역동두천시내에는 3개역이 소재하는데 남쪽에 동두천역, 북쪽에 소요산역, 그리고 그 중간에 동안역이 있다. 동두천역에서 북쪽으로 5분정도 열차를 타고가면 전형적인 일본식 철도역사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동안역을 만난다. 마치 청와대처럼 지붕은 녹청색이고 중앙에 노란 띠를 두른 벽면이 온통 붉은 색의 벽돌조 맛배 단층 기와지붕의 건물이다. 이런 건물은 경원선 가운데 동안역, 전곡역, 연천역, 신탄리역 등 4개의 역사뿐이다. 역 건물만 보아도 어린 시절의 낭만어린 기차 여행을 연상시킨다.
동안역(東安驛)은 1912년 7월 2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고 동두천역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1984년 2월 10일에 어수동역을 동두천역, 동두천역을 동안역으로 개명했다. 동안동은 1981년 7월 1일 법률 3425호에 의해서 동두천동(東豆川洞)과 안흥동(安興洞)을 합해서 양쪽에서 한글자씩 떼어서 조자한 것이다. 동안역의 역사(驛舍)는 작지만 역사(歷史)는 이처럼 화려하다.
1일 서울, 의정부쪽으로 나가는 승차객 350∼450명, 동안역 부근의 피혁공장과 미군부대에 출퇴근하는 강차객 400∼500명 정도의 승객이 오가는 시외곽에 외치한 작은 역이지만, 인접한 큰 동두천역이 단선 철로 하나만 덩그러니 가지고 있는데 비해서 동안역은 화물열차를 정차시켜놓고 화물을 내릴수 있는 진입선을 많이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역을 나서 5분정도 걸어가면 마주치는 미 2사단 캠프 케이시를 보면 언뜻 이해 할수 있을 것이다. 즉 동안역은 부산항에 도착한 미군 군수물자를 기차로 싣어와 하역하는 국가안보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군사역 역할을 하는 곳이다. 즉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는 아주 중요한 역이다. 언제 어떤 물건이 수송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군사 비밀이기 때문이다. 실제 평상시에 동안역에 가면 그저 시골의 한적한 역과 똑같다. 다만 ‘25TH TRANSPORTATION BATTLION(25 수송대대)’란 영문자가 선명한 텅빈 화물열차를 통해서만 원초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동안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주로 3분류로 나눌수 있다. 첫째는 미군부대에 출퇴근하는 군속이나 미군들이 외출시 이용한다. 둘째는 동안역 뒤쪽에 위치한 피혁단지에 관련있는 사람들의 내방이다. 이 피혁단지는 2천년 6월에 조성된 동두천 지방산업단지로 서울, 의정부 등지에 흩어져 있던 영세한 염색, 피혁공장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다. 공장이 41개이고 종업원이 1500명정도이다. 종업원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 말레이시아인 등 동남아시아인들이 20%이고, 내국인이 80%이다. 셋째는 일상적인 삶을 위한 인근 주민들의 의정부, 서울로의 열차 이용이다.
철도원은 마누라가 반과부라는 우스게 소리가 있드시 조상을 자주 못 찾아 뵙는 대표적인 고된 직종이다. 김삼수(50세, 전남 구례) 역장을 중심으로 역무원이 5명씩 2개조로 24시간 격일 근무를 하고 있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그리운 사람들이 찾아 오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기차가 늘 두려운 존재이면서도 반가운 존재이지도 모른다. 역무원들은 역전광장에 동안농장이라하여 토기장, 자판기, 공중전화, 심지어는 페치카를 설치 하였다. 페치카는 손님들이 직접 나무를 넣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10개 항목으로 된 “철도 고객 서비스 헌장”이 걸려 있었다. 첫째, 동안역은 3분이내에 열차표를 구입 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둘째, 동안역은 여객열차의 97% 이상이 시간보다 10분이상 지연되지 않도록 한다. 셋째, 동안역은 전화안내 및 전화예약이 24시간 가능하도록 대기하겠다(이하 생략). 이번 여름방학 동안에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타면서 표 한 장을 사기위해서 역 대합실에서 이틀간을 기다린 것을 생각하면 딴 나라에 와서 사는 기분이다. 동안역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한수 이북에서 유일하게 무연탄 저탄장이 있는 곳이다. 서울 이문역 구내에 있던 우리나라 최대의 저탄장이 세월의 여파에 밀려 폐쇄되면서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영동선 철암역에서 1일 1000톤(20량), 연간 5∼6만톤정도의 무연탄이 동안역에 도착되어 역에 붙어있는 동원연탄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제조되어 서울, 의정부, 동두천 등 한수 이북의 지역으로 팔려 나간다. 연탄은 공기 구멍이 있기에 구공탄, 또는 구멍탄 이라고도 부른다. 가정의 난방용, 취사용으로 사용되는 구공탄은 무게가 3.3㎏인데 가난한 우리네 서민들의 생필품이나 다름없다. 도시가스의 보급으로 대부분 사라져버린 연탄은 고생대 지층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에 코크스, 목탄가루, 당밀, 전분, 석회, 펄프 폐액 등을 섞어서 만든 것인데, 일산화탄소를 발생하여 가끔은 생명을 뺏어 가기도 한다. 역 구내에는 산처럼 높게 쌓인 검은 석탄더미가 있다. 불도저 두 대가 크렁크렁 움직이고 있었고, 무너지는 연탄더미를 연신 연탄 공장쪽으로 밀어 올렸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동안역은 1일 각각 17회씩 정기적으로 의정부-신탄리를 왕복운행하는 열차이외에 하행 5회, 상행 4회가 더 운행된다. 이 열차는 원래 의정부-신촌간을 운행하는 교외선 열차인데,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에 동안역까지 더 운행하고 있다.
필자는 이 열차를 만나기 위해서 경원선 열차를 취재하면서 여러번 동안역에 내렸지만 번번히 시간에 쫓기여 이 열차를 만나지 못했다. 5번 째로 간날에 드디어 이 열차를 만났다. 필자가 이 열차를 만나려고 한 이유는, 이 열차에는 한국철도 100년을 기념하는 문양과 심볼마크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899년 9월 18일 서울의 노량진역과 인천의 제물포역 사이에 최초로 열차가 개통되었다. 현재 노량진역 구내에는 ‘철도시발지’라고 새겨진 돌탑이 서있다. 경원선은 1914년 완전 개통이래 올해로 97주년이 되는 해이다. 경원선의 역사가 100년이 거의 다 되었건만 아직도 기차는 원산까지 가지 못하고 신탄리역에서 멈추어 서있다. 통일의 555리 철길을 경원선 철마는 오늘도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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