克日

1931년 9월18일 심양 북쪽에 있는 간선철도가 일본군에 의해 폭파되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군은 이를 중국군 소행이라고 날조, 전쟁을 일으켜 중국 동북부 일원을 장악했다. 이듬해 3월에 만주라는 국호의 일본의 괴뢰정부를 세워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이것이 만주사변이다.

1937년 7월7일 북경 근교 영정강 다리 노구교에서 일본군은 훈련중인 중국군을 향해 일부러 총을 쏘아 무력충돌을 도발했다. 그러나 중국군이 먼저 일본군을 향해 총을 쏘아댄 것처럼 사건을 조작했다. 이른바 노구교사건이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중일전쟁이 일어났고 마침내는 태평양전쟁으로 확전했다.

1941년 8월8일 새벽에 일본군 해상항공대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의 태평양함대를 기습하고 나서 일본은 주미대사를 시켜 선전포고 문서를 미국무성에 접수시켰다. 당시 국무성은 “유례없는 몰염치한 외교 문서”라고 혹평했다. 태평양전쟁 발발의 비사다. 60년이 지났다. 미국의 주력 전함 애리조나호가 침몰된 수중 잔해를 지금도 볼 수 있도록 만든 ‘애리조나기념관’은 진주만의 성역으로 돼있다. 당시의 생생한 공습 기록영화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고 1천177명의 사망자 명단을 동판으로 새겨놓고 있다. 방문객들이 관람하는 동안 추모곡이 울려퍼진다. 미국은 진주만의 치욕을 이렇게 해가며 아직도 잊지않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총리는 지난번 방미때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패전국 일본에 승전국 미국이 관대하게 대해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국와 중국에는 여전히 오만하다. 심양철도 폭파사건, 노구교사건을 날조한 일본은 지금도 역사교과서를 날조하고 있다. 한국 침략사에 대한 날조 또한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다.

이는 미국은 자기들보다 힘이 있고 한국과 중국은 자기들보다 힘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들 주도의 소위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즉 아시아의 맹주를 자칭하던 침략근성을 아직껏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가 지난 13일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전격 강행, 태평양전쟁 전범자들을 경배해 규탄의 소리가 드높다. 규탄도 물론 해야 하지만 크게 다짐할 것이 있다. 일본사람들은 진실로써 우리를 두렵게 알도록 하는 깊은 국력배양이다. 나라의 힘을 빨리 키워 저들못지 않게 힘이 있는 나라로 인식시키는 노력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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