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기사 윌리엄

132분의 러닝타임이 흐른 뒤 유럽 대륙 투어가 마무리되는 영국 런던의 경기장. 숨을 죽이며 마지막 승부를 지켜보던 관중들이 승리자의 탄생과 함께 퀸의 ‘위 아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을 부르자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스태프 자막이 올라온다.

14세기 유럽을 무대로 마상창술대결 등이 펼쳐지는 ‘기사 윌리엄’(원제 A Knight’s Tale)은 장중함과 트렌디 드라마의 감각이 한데 모은 복합장르 영화다.

누구나 환상을 품음직한 중세 기사의 이야기에 코미디란 양념을 얹고 현대 유행음악이란 기름을 쳐서 버무렸다.

가난한 지붕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은 주인으로 모시던 기사 액터 경이 마창대회 도중 숨지자 대타로 출전해 얼떨결에 우승의 황금종려 가지를 거머쥔다.

마창대회에는 귀족만이 출전할 수 있지만 자신감을 얻은 윌리엄은 마술과 창술 등을익힌 뒤 울리히 경이라는 가짜 작위 신분으로 아예 마창대회 전문기사로 나선다.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그는 귀족의 딸 조슬린에게 연정을 품게 되고 조슬린 또한 윌리엄의 남자다움에 이끌린다. 그러나 연적인 에드해머 백작이 윌리엄의 뒤를 밟아 출신의 비밀을 밝혀내는 바람에 그는 사랑과 명예와 부는 물론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놓인다.

말을 탄 두 기사가 키를 넘는 창을 꼬나쥐고 서로를 노려보다가 땅을 박차고 돌진해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장면은 ‘벤허’의 전차경주나 ‘글래디에이터’검투시합에 비길 정도로 수준급이다.

관중들이 깃발의 움직임을 따라 ‘파도타기’ 응원을 펼치거나 대장장이 처녀가 갑옷을 만들어주며 나이키의 상표를 심벌로 새기는 장면 등에서는 재기발랄함이 넘쳐난다.

한편 중세 유럽풍의 화면을 뮤직 비디오 삼아 퀸, 에릭 크랩튼, 데이비드 보위 등 팝거장들의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화면이 바뀔 때마다 감정 연결이 끊어져 중세와 현대, 그리고 서사극과 코미디의 결합이 화학적인 ‘퓨전(Fusion)’에 이르지 못하고 물리적인 ‘믹스처(Mixture)’에 그쳤다. 관객들도 경기장 장면만 나오면 긴장과 흥분에 휩싸이다가 멜로풍의 대목에서는 이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윌리엄 역의 헤쓰 레저는 영화 전편을 이끌어갈 카리스마가 부족했고 조슬린 역의 셰넌 소새이먼은 관객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떨어졌다.

‘LA 컨피덴셜’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차지한 브라이언 헬게랜드가 각본과 감독에 프로듀서까지 맡아 다재다능함을 과시하려는 시도가 애초에 무리였을까. 24일 개봉.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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