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가 망가지고 있다.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가 이미 주택가까지 파고드는등 주거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다 초고층 주상복합주상건물도 줄줄이 들어설 전망이어서 인구 과밀화의 우려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깨끗하고 쾌적한 계획도시로 가꾸겠다는 당초의 목표가 오래전에 사라진채 기반시설 부족 및 향락소비 도시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신도시의 실상과 문제점 등을 알아본다.
서울과 20여㎞ 떨어진 분당, 일산 등 1천516만평에 5개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처음 발표된 것은 지난 88년9월. 집값 및 전세값 파동으로 거리에 나앉은 가장이 자살하는등 커다란 홍역을 치른 시점이다.
당시 정부는 주택가격 안정과 건설경기 부양,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 일환으로 평촌·산본지역 281만평에 인구 32만여명을 유치하는 신도시개발계획을 전격 발표한데 이어 89년4월에는 분당·일산·중동지역 1천235만평에 인구 83만여명을 유치하는 신도시개발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뒤 신도시 건설은 3년이라는 초단기 기간에 이뤄져 91년 9월 분당 시범단지에, 92년 4월에는 산본1단지 주민들이 입주를 시작으로 산본·중동 신도시가 지난 94년 12월, 96년12월에는 분당신도시가 준공되면서 개발사업이 완료됐다.
보통 택지개발지구를 지정하고 건설계획을 발표하는 것과 달리 신도시는 정부 발표뒤 택지개발지구 지정이라는 꿰맞추기식으로 개발이 이뤄졌다.
신도시는 110여만명에게 비교적 쾌적한 새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었지만 급하게 건설되는 바람에 교통, 의료 등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으며 당초 기대했던 자족기능도 갖추지 못했다.
특히 정부는 지난 93년 8월 준농림지역내 3만㎡ 미만의 농지와 임야 개발을 허용한데 이어 94년 도시계획구역에서 2㎞이내는 용적률 250%, 층고 20층까지는 완화조치로 인해 신도시는 주변 위성신도시에 둘러싸이게 됐다.
당시 정부가 밝힌 수도권 5개 신도시는 한마디로 ‘꿈의 전원도시’였다. 259개소의 근린공원과 어린이공원 등 풍부한 녹지, 35개소의 대형 할인매장과 백화점 등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쇼핑천국’이라고 할만큼 신도시는 생활편익시설들이 골고루 들어서 신세대는 물론 노령층에 이르기까지 쾌적한 삶의 공간을 이뤄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현재 ‘꿈의 전원도시’는 퇴색되고 말았다.
신도시 중심 상업지역에는 소비문화의 상징인 단란주점과 유흥주점으로 잠식된 상태다. 수도권 5개 신도시에서 지난 95년 26곳에 불과하던 유흥주점이 6년사이 14배 가까운 355곳으로 늘었으며 러브호텔도 95년 1곳에 불과하던 것이 같은기간 79곳으로 늘어나는등 신도시가 향락문화에 점령될 위기에 처해 있다.
호수공원을 끼고 일산 신도시로 들어서면 안마시술소, 호텔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도시 곳곳으로 이처럼 향락문화가 스며들면서 도시를 병들게 하는데 반해 주민·지역공동체를 위한 주요 문화·체육시설은 물론 약속된 공공시설들은 상당수가 감감 무소식이다.
산본신도시 조성과 함께 종합운동장으로 조성될 군포시 금정동 금정중학교 건너편 빈터 2만5천여평이 10여년째 놀고 있으며 광정동 6단지 앞으로 들어선다던 시외버스터미널 부지 2천500여평은 개발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당신도시 백궁역 일대 빈터도 마찬가지. 맞은편에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와는 대조적으로 드넓은 대지위에 이름모를 꽃과 풀들이 무성했으나 성남시가 더이상 노는 땅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난해 5월 업무·상업용터 17만여평중 8만여평에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도시설계 변경을 허용했다.
고양시도 유통업무시설 용지로 지정된 백석동 출판문화단지 3만3천여평에 55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도시설계변경을 추진하고 있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해 분당 시민단체들은 “이런 임의적 도시설계변경은 결국 계획인구로 조성된 신도시에 고밀도·과밀화를 초래해 자족기능의 상실은 물론 신도시를 기형화시켜 주거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며 시의 용도변경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용인, 파주 등 신도시 주변지역에서는 기반시설 없이 신도시의 도시기능에 의존하는 기생적인 난개발들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어 그나마 간신히 유지되던 신도시의 도시기능은 아예 마비될 지경이다.
특히 분당의 경우 서울 강남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고속화도로, 서울 중심까지 논스톱으로 갈 수 있는 직행버스 등 도로여건과 교통시설도 확충됐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용인 서북부 기흥·수지·구성지구를 분당인구와 맞먹는 규모로 개발하고 있어 경부고속도로와 양재, 수서를 잇는 고속화도로는 극심한 체증을 유발, 교통지옥으로 까지 불리우고 있다.
이처럼 신도시는 안팎으로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나서 신도시 기능을 회복하려 하지만 해당 자치단체의 의지 결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러브호텔에 맞서 고양시에서는 10만명 서명운동을, 중동신도시에서는 16만명 서명운동을 각각 벌여 결국 러브호텔 신축을 금지시키는 성과를 올렸으며 신도시 과열 교육열풍을 막기 위해 5개 신도시의 학부모와 교사,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평준화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 일부 자치단체의 세수입을 노린 얄팍한 임의적 용도변경과 마구잡이 개발로부터 ‘삶의 질’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집단적 저항 움직임도 점차 거세지는등 신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 해결에 주민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분당 백궁역 맞은편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상호씨(45)는 “신도시 주변에 새로운 신도시가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며 “이들 도시와 도시기능을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자족형 도시로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관식기자 ks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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