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한여름 대낮의 동네 정자나무 그늘은 더할 수 없는 피서지다. 맨땅도 좋지만 멍석자리에서 한숨 푹 자는 납량의 쾌감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장군 멍군해가며 장기판으로 한여름 농사의 뙤약볕을 피해 망중한을 달래기도 한다. 정자나무 가지에서는 매미가 요란스레 울어댄다. 곁에 개울물이 있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더욱 시원하다.

피서지는 집안에도 있다. 바람이 사통팔달하는 대청마루에 큰대자로 드러누어 목침배고 눈을 감고 있노라면 납량감에 빠져 어느새 사르르 잠이든다. 대청을 어른에게 빼앗긴 젊은 사람은 뒷마당 감나무 그늘에 둔 대나무 평상에서 오수를 즐긴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난 다음의 앞마당 평상은 가족 간담회 자리다. 찌푸라기나 마른 풀을 연기만 나게 태워가며 모기를 물리친다. 옥수수며 감자는 밤참 별미다. 식구마다 그날 겪은 일을 오손도손 얘기해가며 집안 살림을 설계하고 내일의 일꺼리를 정하곤 한다. 밤이 깊어가면 어른들 곁에서 놀다가 무섭다며 가운데로 파고들어 잠든 아이들을 안고 방으로 향한다.

이 무렵의 유일한 피서 도구는 부채다. 대나무 발에 종이를 바른 부채다. 지금의 플라스틱 부채처럼 둔하지 않고 날렵해 부치면 바람이 여간 잘 일어나는게 아니다. 그러던게 선풍기란 것이 나왔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선풍기는 오늘날의 에어컨보다 더 귀했다. 지금은 선풍기마저 한물간 피서요법이 돼 에어컨이 대중화되다시피 한지 오래다. 그런데도 옛날 사람들보다 유별나게 더위를 더 탄다. 바캉스란 말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도 고도성장이 한창이던 30여년 전이다. 그전에는 피서라야 천렵이 고작이었지만 이젠 하천마다 오염돼 천렵을 즐길 수가 없게 됐다. 국내 피서행으로도 모잘라 외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넘친다니 외화를 그렇게 마구 써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다.

여름은 더워야 제격이다. 그래야 오곡백과가 무럭무럭 자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더운것은 사실이지만 더위를 견디는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더위에 짜증내는 오두방정은 더욱 덥게 만든다. 더위를 거부하기 보단 받아 넘기려는 마음가짐의 슬기가 중요하다. 그동안 ‘덥다’ ‘덥다’했지만 여름 더위는 장마비가 그치면 정작 이제부터다. 오늘이 삼복이 시작되는 초복이다.

/白山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