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밥이 먹어서 굶주리는 결식 초·중·고·학생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데도 좀 웬만한 집 아이들은 왕자와 공주로 살아간다. 보는 것은 물론, 먹는 것과 입는 것이 모두 왕자, 아니면 공주수준이다. 모두 부모를 잘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들의 왕자·공주 만들기는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의 국어, 영어, 수학, 과외는 물론 미술, 음악, 체육 등 과외로 본격 궤도에 오른다. 유아에게 음악, 미술, 영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놀이학교의 경우 한달수업료가 35만 내외이지만 빈자리가 없어 대기자가 넘친다. 또 한달에 수업료가 80만원이 넘는 영어유치원이 서울 강남에는 20여군데가 성업중이다. 100만원이 넘는 초등학생 영어과외까지 생겨났다. 이름하여 핵가족시대, 한 두 명의 자녀를 갖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같은 ‘왕자·공주’신드롬은 ‘당신이 곧 최고의 귀족’임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상업주의, 난공불락의 ‘가족이기주의’, 그리고 자녀를 통해 부를 과시하려는 행태와 맞물려 있다.
이미 교육적 목적을 벗어난 ‘신귀족주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의 생존기술을 익히는 차원을 뛰어 넘었다. 자식의 과외비를 위해 어머니가 파출부로 나가는 것 까지는 봐준다 치고 윤락행위까지 한다는 블랙코미디도 있다.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영화도 개봉된다고 하니 아무리 영화라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아이들은 한 집안의 왕자와 공주로 당당히 군림한다. 학업과 특기계발이 자신보다 부모들이 체면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게 성장한 왕자·공주의식은 결혼문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궁전같이 생긴 최고급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고궁과 문화시설 등 배경이 그럴듯한 곳을 찾아 미리미리 기념사진을 찍는다. 제주도가 선망의 신혼여행지에서 제외된 것은 이미 오래됐다. 왕자와 공주문화의 완성을 위해 유럽이나 미국, 동남아로 떠난다.10여년 전 화려하게 도시무대에 등장했던 압구정동 오렌지족은 이렇다할만한 문화적 자취를 남기지 못한 채 홀연히 퇴장했다. 왕자·공주병에 걸린 ‘신귀족’은 10년후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내 돈으로 왕자와 공주 만드는데 참견말아라? 돈 없는 것도 자랑이냐? 그러나 왕자와 공주의 생활은 지켜보는 것은 자유다.
/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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