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탓?

처참한 가뭄으로 한반도 전역 농경지가 황무지로 변하고 있다. 대지만 타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목도 마르다. 영국 BBC방송도 “한반도가 근 100년만의 가뭄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옛날에도 강줄기가 끊길 정도의 가뭄의 여러차례 있었다. 조선조 숙종 47년 속리산의 하류이자 달천의 상류로써 근원이 가장 멀어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청천강물이 5리 가량이나 끊어졌으며 인조 42년에는 경상도 가뭄으로 낙동강 물줄기가 끊겼다. 인조 20년에는 경기 관내에 가뭄이 심해 하얀 벌레가 벼줄기를 갉아먹고 또 검은 벌레가 벼 싹을 거의다 먹었다. 가뭄으로 해충까지 발생한 것이다.

가뭄이 심해지자 왕과 조정에서는 명산대천을 찾아 기우제를 지낸 것은 물론이고 태종 5년에는 가뭄으로 인해 물을 허비하는 것을 금했다. 중종을 비롯한 많은 왕이 날씨가 가물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다.

태종·광해군·영조·정조 때는 가뭄을 걱정, 음식 가짓수를 줄이라고 명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문은 다른 자연재해에서도 그렇듯 왕과 신하들은 가뭄을 자신의 허물로 돌린 점이다. 태종과 세종이 그러했고 영조도 가뭄을 ‘모두 내 탓이오’라고 자신의 허물로 돌리고 “비가 내리지 않고 있는데 무슨 마음으로 약을 먹겠느냐 ”며 병중에도 탕약을 거절했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열린 마당 ’에서 한 네티즌이 “대통령이 기우제를 지내는데 대해 특정종교가 반발할 수 있다면, 총리나 농림부장관이라도 기우제를 지낼 수 없겠느냐 ”고 제의했다.이에 대해 다른 네티즌이 “ 아무리 대통령제라지만 자연재해를 대통령1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건 짐승보다 못한 생각 ”이라고 응대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온다면 해보겠다. 그러나 그런 걸 하면 비과학적 대통령이란 얘기가 나올 것 같아 못한다 ”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민·관·군이 합심하여 밤낮없이 가뭄극복에 피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때 ‘내 부덕의 소치 ’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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