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이슈>바이러스 검출 수돗물 안전성 논란

주부 이모씨(59·의정부시 호원동)는 요즘 콩나물 10원어치라도 아끼기 위해 10여년전 접어뒀던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최근 큰 마음을 먹고 56만원하는 정수기를 월부로 쌌기 때문이다.

IMF로 건축설계사업을 하던 남편이 부도를 내 겨우 전셋집을 얻을 여력만 남기고 모두 탕진한 상태에서 이씨 부부는 아들 둘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생활에 부족함이 없던 용돈에서 몫돈을 떼고 나니 이씨는 허리띠를 졸라 맬 수 밖에 없게 됐다.

이씨가 정수기를 산 이유는 지난 2일 환경부에서 수돗물에 뇌수막염, 급성장염, 간염 등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발표를 보고 나서 항상 꺼림찍했던 수돗물을 더이상 마시기가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정은 비단 이씨만이 아니다. 환경부의 수돗물 바이러스 검출 발표이후 수돗물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나 경기도 관계자들은 “끓여 먹는다면 안전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지, 아니면 다른 대책이 있는지 살펴본다.

◇수돗물 바이러스 논란에 의한 공식 확인

수돗물 바이러스 검출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이러스로 인해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느냐다.

그러나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3년전 이미 학계에서 수돗물의 바이러스 검출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부가 이를 묵살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상종 교수(49)는 처음으로 서울과 부산 각 2곳의 수돗물에서 1천ℓ당 1∼10마리의 아데노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해 5월에도 “99년 한해동안 매달 서울 관악구,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논현동 일대의 수돗물을 조사한 결과 엔테로바이러스와 아데노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엔데로바이러스(Adenovirus)와 아테노바이러스(Enterovirus)는 장(腸)관계 바이러스의 하나로 결막염 및 설사, 호흡기 질환, 뇌수막염 등을 각각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김 교수는 97년 서울과 부산 등 2개 대도시 지역 11곳에서 23차례에 걸쳐 수돗물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소아마비 백신에서 발견되는 폴리오바이러스가 9차례나 검출됐다고 발표했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환경부는 “김 교수의 검출방법은 신뢰성이 결여된 유전자검색법”이라며 바이러스 검출을 정면 부인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정부와 미국 환경보호청(EPA)가 인정하는 총세포배영법으로 검사한 결과에서도 같은 결과를 도출해 냈다며 수돗물의 안전성에 치명적 문제가 있음을 계속 제기했다.

그런데도 서울시와 환경부는 이를 인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서울시는 김 교수를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했다.

이같은 논란이 일고 있는 상태에서 환경부가 지난 2일 김 교수의 주장을 확인하는 수돗물 바이러스 검출을 발표했다.

환경부가 경희대 생물학과 김형석 교수팀에 의뢰, 하루 처리능력 10만t 미만의 중·소규모 정수장 31개소와 일반 가정의 수돗물 수질을 측정한 결과 7개소 정수장과 4개소 가정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남양주 화도정수장과 양평군 양평정수장에서 각각 100ℓ당 0.1마리(단위 MPNIU)가 검출됐다.

또 하루 처리능력 5만t 미만의 지방상수도를 사용하는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수돗물을 조사한 결과 하남시 신장2동 모가정집에서 1.4마리가, 여주군 여주읍 모가정집에서는 가장 많은 33.5마리가 나타났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검출농도가 미미하다며 “끓여 먹으면 안전하다”고 밝히고 있다.

◇바이러스 인체 감염 여부

김 교수는 환경부가 발표한 농도면 인체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높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미국은 국민 1만명이 1년간 수돗물을 마셔 1명도 감염되지 않도록 수돗물을 관리하고 있다”면서 “이 기준에 맞추려면 수돗물 1천ℓ에 바이러스가 한마리도 검출돼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지난 79년의 세계보건기구(WTO) 보고서에 따르면 장염을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의 경우 미량만으로도 여러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면서“수돗물에 포함된 바이러스는 위해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번에 발견된 엔테로바이러스는 무균성뇌막염의 원인 바이러스”라면서 “이 병은 매년 5월에 유행하며 어린이들이 빈번하게 걸린다”고 지적했다.

◇수돗물 그냥 먹을 수 있나

현재 시민단체와 학계는 수돗물을 끓여 마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환경부는 수돗물을 반드시 끓여 마셔야 될 정도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기준을 적용하면 수돗물 1천ℓ에 바이러스가 한마리도 검출돼서는 안된다”면서 “그러나 이번에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수돗물을 3분 이상 끓여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대장균이 발견되면 개선조치가 완료돼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수돗물을 끓여 마시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일부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기는 했으나 기술진단 등 개선조치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아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면서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큰 문제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수돗물 바이러스 검출 원인은.

현재 정확한 수돗물 바이러스 검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원인은 ▲필요소독능력 부족 ▲운영인력 전문성 부족 ▲노후 상수관 등 관리상의 허점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이같은 원인에는 동의하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원수가 오염돼 있고 바이러스는 소독제에 대한 내성도 강하기 때문에 수돗물의 오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특히 “정수가 막 끝난 정수장의 물에서도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것은 정수장의 정수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환경부의 발표에 지자체 반발

신장2동 가정집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나자 하남시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하남시는 “바이러스가 검출된 신장2동사무소에서는 지난해 6월 단 한번 뿐이고 그 이후인 9월과 12월에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는데도 뒤늦게 이 사실을 발표, 시민들에게 불안감만 주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여기에 경기도도 가세했다.

경기도는“차 모니터링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으나 2차 모니터링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는데도 환경부가‘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식으로 발표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 “정수장에서 검출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가정 수돗물에서 검출됐다는 점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격 대책

환경부는 “바이러스는 관리를 잘 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면서 “모든 대책을 총동원해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후약방문격인 입장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환경부가 3년전 학계의 연구발표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에 아쉽다”며 “이제라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우선 단기과제로 문제 정수장에 대한 정밀 기술진단을 실시하고 전국 중·소규모 정수장 소독능력에 대한 일제 점검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수돗물 수질기준을 크게 강화하는 것은 물론 수돗물 바이러스 처리기준을 새로 도입하고 국립환경연구원에 ‘상수도기술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중·장기과제로 4대강 수질개선대책 계획대로 추진, 취수원 다변화 사업, 대체상수원 개발, 노후수도관 교체사업 강력 추진, 상수도 운영·관리 정보화(e-상하수도) 등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이 과연 실효성을 거둘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유재명기자 jmyo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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