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심판 얘기를 다시 해야겠다. 주심의 오심을 전제해두고 하는 경기가 야구다. 프로든 아마든 다 같다. 주심이 보는 스트라이크존은 심판마다 각기 다르다. 투수의 투구는 시속 120㎞ 이상이다. 이를 스트라이크나 볼로 보는 순간의 판단도 어렵지만 다이아몬드 표지판을 기준으로 판별하는 공간의 차이 또한 주심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높은 공, 또는 낮은 공을 좋아하는가 하면 안쪽, 바깥쪽을 보는 각도 역시 차이가 있다. 대개 야구공 반만의 차이는 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니까 주심의 심판엔 야구공 반만한 오심은 있는 것으로 치고 경기를 치른다.
세상에 이처럼 불공정한 경기가 어디에 있겠나 싶지만 공정한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주심마다의 오심을 모든 선수들에게 차별없이 똑같이 적용하기 때문에 비록 오심이라도 경기는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상대 선수에 따라 누구에겐 이렇게 또 누구에겐 저렇게 적용하거나 상대 팀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김동엽씨는 프로야구 청룡팀 감독시절 “야구는 이래서 신용을 담보로 한 가장 신사적인 운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야구의 이런 오묘함은 사회의 일상생활에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사회생활은 경우란 것이 있다. 경우의 가치기준을 상대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해서는 공평하다 할수 없다. 법과 원칙도 사람을 봐가며 적용을 달리해서는 역시 공평치 못하다. 비록 잘못된 법이나 잘못된 적용일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하면 공평하다. 그러나 좋은 법, 잘된 적용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서는 공평치 못하다. 법의 위엄이 많이 떨어진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간다. 이는 법 자체의 잘못이 아니다. 법을 적용하는 이들의 잘못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제 좋을대로 법과 원칙을 갖다대는 신뢰의 상실이 법과 원칙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처럼 사회규범에 혼란이 오면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가치관의 혼돈 때문이다. 법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것이 아니다. 법 운용을 자의적으로 하면 언젠가는 그 또한 자의적 운용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한다. ‘형명(법)의 적용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막힘이 없고 유연해야 한다’고 했다. 한비자의 말이다.
/白山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