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웃사촌>사이버 이웃사촌

빽빽한 아파트 숲. 주차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살벌한 풍경이 드물지 않고 한 집 건너 이웃에 어떤 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각박한 아파트 생활속에 ‘사이버 이웃사촌’이 살고 있다.

아파트 단지 이웃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주민들의 만남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것.

“2000년의 마지막 밤을… 그리고 2001년의 새아침을 주민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12월 31일 오후 9시 단지내 앞 공원으로 나오세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수원시 팔달구 영통동 청명마을 주공 4단지 아파트 부녀회가 게재한 글이다.

지난해 9월 이 아파트에 들어온 주부 이모씨(32)는 도무지 자신이 1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신도시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아파트 하면 보통 개인주의가 팽배해 이웃과 담쌓고 살잖아요. 그래서 걱정도 많이 했죠. 그러나 지금은 안그래요. 오랫동안 사귀어온 사람들 같아요.”

이씨는 “이 아파트에 들어온지 4개월밖에 안됐지만 벌써 맘이 통하고 편한 이웃사촌만해도 20여명이 넘는다”며 자랑을 늘어 놓았다. 요즘은 평소 영화를 좋아하던 취미를 살려 단지내 영화 동호인 모임인 ‘스크린’에 가입할지 생각중이다.

현재 아파트 입주민 가운데 인터넷을 통해 취미생활을 함께 나누는 동호인 모임만도 10여개에 이를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자랑한다.

지난 97년 입주한 아파트 단지내 인터넷 홈페이지가 개설된 것은 지난해 7월.

단지내 946가구 가운데 500여가구 입주민에게 e-메일 아이디도 주어졌고 전용 홈페이지(www.cm4.town119)이용, 사이버 커뮤니티를 이루며 살고 있다.

인터넷 업체인 네시아가 홈페이지 개설을 희망하는 가구들을 대상으로 전용선을 설치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낯모르는 이웃이라도 인터넷 공간에서 만나 단지내 현안을 의논하고 정보공유와 물물교환운동을 하는 등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대화를 나누는 공동네트워크를 생활화 하고 있다.

청명아파트의 홈페이지는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관리비 고지서 발부여부, 입주민들의 각종 불편사항을 올리는 관리사무소 게시판과 분리수거 당번, 단지 대청소 등을 알리는 부녀회 알림방, 너구기·눈싸움 등 온갖 게임이 올려져 천진난만한 어린이들만의 세상인 어린이 전용 게시판. 주부들의 일상생활과 수필 등을 자유롭게 게재한 아줌마들의 수다장. 그리고 부동산·슈퍼마켓 등 주변 상가의 모든 정보를 세밀하게 띄우는 생활정보방도 개설돼 있다.

이웃간의 벽허물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부녀회는 불법주차 추방운동, 단지내 대청소등을 통해 살기편한 아파트 만들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아나바다 운동, 헌옷 모으기 등을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소외계층 돕기에도 사용, 이웃사랑에도 두팔을 걷고 나서 주위로부터 칭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청명주공 부녀회장 김가희씨(39)는 “이제는 인터넷으로 아파트내 CCTV를 활용, 온라인 반상회를 열어볼까 생각중”이라며 “취미가 같은 입주민끼리 인터넷을 통해 모임까지 구성하면서 이웃간의 정을 나누는 것을 볼 때마다 이런 것이 공동생활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마을 정보방.

인터넷 사용환경을 갖춘 이 정보방은 주민들의 인터넷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사이버 자치회 운영을 협의하는 모임방으로도 적극 이용할 계획이다.

이들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내 각종 소식, 벼룩장터, 상가의 바겐세일 등 생활정보를 교환하고 경비는 별도의 운영비를 들이지 않는다.

영어동호회를 만들어 운영중인 김모씨(39)는 초등학교 학부모 등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영어 동화책 돌려읽기 등 정기적인 모임을 주선하며 사이버 공간의 편리함과 주부들만의 재교육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김씨는 “현재 참여 주민이 소수에 불과하지만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해 동호인 모임을 활성화 할 것”이라며 “얼굴도 모르는 주민들이지만 서로의 취미생활을 함께 나눠 살기 편하고 즐거운 아파트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김창학기자 chkim@kgib.co.kr

<미니인터뷰>

아담하고 소박한 산을 뒤로 하고 자리잡은 수원시 팔달구 영통동 청명주공 4단지 아파트 부녀회장 김가희씨(39)를 관리사무실 2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사이버 아파트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인지.

▲얼굴도 알지못하는 주민끼리 서로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털어놓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친숙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이제는 말그대로 서로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누는 정다운 이웃사촌이다.

-아파트 홈페이지가 개설됐다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궁금한데.

▲사이버 아파트에 살고있다는 주민들의 자부심은 말로 못한다. 어느곳을 가든지 아파트의 홈페이지를 자랑하며 단지내 축제, 각종 활동 등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정도다.

-어려웠던 점과 주민들에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단지내 불편한 사항을 매일 체크, 곧바로 고쳐야 하는 점에 대한 정신적 부담감이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고충과 기쁜소식을 함께하며 접할 수 있어 좋다. 앞으로 모든 입주민이 홈페이지를 개설, 정말 좋은 아파트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것이 있나.

▲맞벌이 부부들과 노인가구가 있어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활의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또 인터넷을 통해 반상회를 열어볼 생각이다.

/김창학기자 chki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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