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夫자는 지아비부자인 반면에 유부남의 婦자는 며느리부자인 점이 특이하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 그대로 하면 ‘부인부’라든지 ‘지어미부’라야 하는데도 ‘며느리부’라고 한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지만 그보단 한 집안의 며느리로 보는 것이 시댁과 더 일체감을 갖는 것으로 해석된 연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유교사상의 여필종부 관념은 많은 여권을 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레짐작하는 것처럼 말살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출가한 딸의 상속권이 있었으며 집안의 어른이 된 노마님은 대소사에 막강한 재량권을 행사했다. 무엇보다 타고난 성씨를 바꾸는 일이 없다. 세계에서 여성이 남편의 성씨를 따르지 않는 나라는 우리와 중국밖에 없다. 서구는 물론이고 일본도 결혼하면 남편의 성씨로 따라 바꾼다.
서구사회 여성이라고 하여 예전부터 우리 사회보다 별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 나온 것은 다 19세기후반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또 여성의 문밖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에도 자유분방한 여인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종조에 천민과도 교접을 가리지 않을만큼 수많은 분방자재의 훼절로 조정을 발칵 뒤집은 어우동은 대감반열의 딸이며 종실의 부인네였다.
전래 설화에 나오는 옹녀는 색녀로 유명하지만 그만의 책임이랄수는 없을 것이다. 변강쇠같은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옹녀같은 여자가 등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근래 아내의 부정에 의한 이혼률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남편의 부정에 의한 이혼률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양쪽 모두 이유가 있겠지만 어떻든 남편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 상궤다. 이혼률이 높아지는 사회가 결코 건강한 사회랄수 없다.
요즘 여성의 자유분방함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긴하나 우리 고유의 정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묵묵히 가정을 지켜가고 있다. 이는 전통적 부덕이다. 얼마전 타계한 미당 서정주시인의 ‘국화 옆에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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