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臣정치

권노갑씨를 가리켜 전직 대통령들 가신, 즉 전두환씨의 장세동, 김영삼씨의 김동영 최형우씨 등과 흔히 비유하지만 다르다. 주군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가신인 점에선 같지만 장세동, 김동영, 최형우씨 등의 주변엔 이렇다할 별 말썽이 있지 않았다. 장씨는 주군의 하사금을 그때 그때 모았던 것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어르신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김·최씨는 평생 김영삼씨를 위해 몸바치다가 김씨는 주군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못본 채 암으로 타계하고 최씨는 주군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긴 보았으나 얼마 안가 중풍으로 몸졌다.

이들과 권씨의 차이엔 또다른 점이 있긴 있다. 장씨는 청와대 경호실장과 안기부장, 김씨는 정무장관, 최씨는 내무장관을 거치는등 관직을 지낸 것에 비해 권씨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벼슬을 지낸 다른 주군의 가신들보다 벼슬을 안지낸 백면의 권씨 실세가 더 막강했던 사실은 요지경이다. 국가 공권력은 공적 조직에 의해서, 여당의 당권력은 공식 기구에 의해 소통돼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당·정이 비선의 이면에 의해 좌우된 것이 곧 대통령의 측근정치다. 대형 의혹사건때마다 여권실세의 K가 들먹거려진 것은 우연인지 아닌지 궁금하다.

권씨가 민주당 최고위원직을 사퇴, 2선에 물러갔다지만 김대중 대통령과의 비선이 청산되지 않으면 가신정치 폐해 추방에 아무 의미가 없다. 어찌 권씨만의 책임이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권씨가 무소불위의 힘을 얻은 것은 그를 그렇게 할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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