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肉筆)

육필(肉筆)

우리나라의 옛 기녀들은 술을 팔아야 하는 ‘서얼적(庶孼的) 인생이었지만 사대부(士大夫) 문화의 어엿한 한 축을 형성하며 풍류와 예술을 교환했다.

고려시대의 동인홍(動人紅), 조선시대의 소춘풍(笑春風), 황진이(黃眞伊), 홍랑(洪娘), 매창(梅窓), 운초(雲楚), 매화(梅花), 명옥(明玉), 송이(松伊) 등은 신분은 비록 기녀이었지만 문학적으로 더 유명한 사람들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추풍 낙엽에 져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매라” - 매창 作.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황진이 作.

“꿈에 뵈는 임이 신의 없다 하건마는/탐탐히 그리울 제 꿈 아니면 어이 보리/저 임아, 꿈이라 말고 자주자주 뵈시소” - 명옥 作.

“매화 옛 등걸에 봄절이 돌아오니/옛 피던 가지에 피염직도 하다마는/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 매화 作.

이러한 시조들은 거의 정인(情人)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연시(戀詩)들로 문학성이 매우 뛰어난 작품들이다. 얼마전 육필 원본이 처음 공개된 조선중엽 명기 홍랑의 한글 시조 ‘멧버들 가려 꺾어’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던 작품으로 400여년 전 실제로 있었던 ‘러브스토리’를 증명했다.

“멧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나거든 이 몸으로 여기소서”

당대의 문장가였던 최경창(崔慶昌·1539∼1583)에게 보낸 이 연시(戀詩)는 컴퓨터 시대에 육필의 소중함과 영원성을 더욱 일깨워준다.

/靑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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