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雨)를 소재로한 문학작품, 특히 운문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동양인, 그 중에서 우리 한국인은 비에 유난히 다정다감해서인지 자고로 비를 읊은 운문들이 많다.
“한식 비온 밤에 봄빛이 다 퍼졌다/무정한 화류도 때를 알아 피었거든/어떻다 우리의 임은 가고 아니 오는고” - 신흠(1566∼1628)의 시조.
“자당에 비 뿌리고 양류에 내 끼인제/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노매” - 조헌(1544∼1592)의 시조.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추풍 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 계랑(1513∼1550)의 시조.
“비 내리는 봄밤에 낙숫물 소리/노자가 한 평생 사랑한 소리/베옷으로 몸 가리고 등불 돋우며/아내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네” - 권필(1569∼1612)의 한시(漢詩).
“찬 비는 밤 새도록 대숲 울리고/가을이라 풀벌레는 침상곁에서 우네/흐르는 세월을 어찌 머물게 하랴/짙어 가는 백발을 막을 수 없구나” - 정철(1536∼1593)의 한시.
“가만히 오는 비가/낙수져서 소리하니//오마지 않은 이가/일도 없이 기다려져//열린 듯 닫힌 문으로/눈이 자주 가더라” - 최남선(1890∼1957)의 시조 ‘혼자 앉아서’.
비를 소재로 한 시와 시조는 참으로 많은데 봄비를 노래한 작품은 ‘이별’이라고 하여도 유정하다. 그러나 가을에 듣는 빗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감에 젖게 한다. 요즘 경기북부지역이 경기남부지역에 이어 또 수해를 당해 심란스럽기 짝이 없는데 이제는 오지 않아도 될 비가 자꾸만 내린다. 수해지역에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고 빗소리가 두려운 이유는 아무리 예술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생존을 앞설 수 없기 때문인듯 싶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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