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닉슨행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중공)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국제정치사에서 유명한 핑퐁외교가 계기였다. 1971년 일본의 나고야서 열린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 선수단과 기자들이 중공을 방문해 가진 친선경기를 출발점으로 접촉이 시작돼 결국 국교수립까지 발전하였다.
이때까지 두 나라는 1949년에 수립된 중공을 미국은 승인도 안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에 참가한 중국의용군(중공군) 등에 의해 미군 3만여명이 전사(물론 중공군 등의 희생도 컸다)하는 등 묵은 원한이 있어 매우 껄끄로운 사이였다. 그같은 20여년의 구원을 넘어선 것이 핑퐁외교가 계기였던 것이다.
인간사회나 국제사회나 따질 것은 따져야 하는 것이 사리지만 지난 일을 따지다가 앞일을 그르칠 수 있는 것이 또한 국제사회며 인간사회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제때 중국대륙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도움을 받고 지금은 대만에 가 있는 중화민국(대만정부)과 단교까지 해가며, 6·25때 총부리를 겨눈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맺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보단 장래를 위해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때문인 것이다. 베트남인민공화국과의 관계개선에서도 우리의 월남전 참전을 거론하는 것은 서로 무익한 것으로 돼 있다.
북측과의 관계개선에서 따져야 할 과거사를 묻어두는 것은 참다운 관계개선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따지기로 말하자면 정말 따질 것이 많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지면 서로 얼굴만 붉힐뿐 민족화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져도 화해와 협력이 성숙된 다음에 따지는 것이 순리다.
남북이산가족의 교환방문으로 반세기만에 체제를 초월한 꿈같은 재회의 감격이 남북에서 넘치고 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은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적이면서 실제적 창구인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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