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깍쟁이

‘깍쟁이’란 물건을 팔기 위해 가게를 차려 놓은 사람, 즉 ‘가게쟁이’에서 변화된 말로서 오늘날의 상인을 말한다. 국어사전에는 ‘인색하고 이기에 밝은 사람’ 또는 ‘몸집이 작고 얄밉게 약빠른 사람’ 등으로 풀이돼 있다.

옛날부터 수원(水原)은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화성군 태안읍 소재지이지만 병점리(餠店里)는 지명 그대로 떡점거리로 유명해 언제나 성시를 이뤘다. 또 현재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장안문 밖에는 1796년 조선조 22대 정조가 양재역(良梓驛)을 폐지하고 신설한 역참(驛站:역마를 갈아서 타던 곳)인 영화역(迎華驛)이 있어 상점들이 많았다. 지금 영화동이 예전에

역촌(驛村), 역말(驛馬), 또는 영말(역마을)로 불려졌던 연유이다.

그런데 수원을 지나가고 오는 사람들 중에는 먼 길을 오고 가느라 노자(路資)가 떨어져 수원 사람들의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병점이나 영화역 일대에서는 숙박비나 식비를 내지 않고 몰래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니 아무리 인심 좋은 수원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연히 계산에 밝아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식사를 하거나 하룻밤 유숙한 뒤 계산을 했거나 하지 못해 무안을 당하고 수원을 떠난 외지사람들이 ‘수원에는 가게쟁이만 산다’거나 ‘수원사람은 가게쟁이’라고 푸념 아니면 원망했을 것은 짐작이 간다.

수원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여러가지 말 가운데 ‘수원사람은 깍쟁이’는 그러니까 ‘수원사람은 가게쟁이’라는 뜻인데 ‘수원사람은 계산이 밝다’로 생각하는 게 옳겠다.

그 옛날 수원 가게쟁이들이 수중에 돈이 없는 길손들에게 어느 정도나 야박하게 대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한양가는 길에 수원사람을 많이 사귀어라’고 했던 옛 시절이 그리워진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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