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진정 국민 보건행정수행능력이 있는 것일까. 의약분업이 전면 시행된 첫날 벌어진 행태들을 보면 당국의 보건행정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 인천 서울 등 수도권의 상당수 병·의원들이 의약분업시행 첫날부터 폐업에 들어갔고, 약국들도 처방약품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는 등 준비 미흡으로 환자들만 애꿎게 큰 골탕을 먹어야 했다.
환자들은 폐업을 하지 않은 병·의원을 찾아 헤매야 했으며, 처방약이 비치되지 않은 약국들이 많아 헛걸음질 치는 이중의 불편을 겪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형 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외래진료와 수술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환자들이 큰 고통을 받았고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태우는 사태가 속출했다.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의약분업이 이처럼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분통
터질 일이다.
정부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키로 했던 의약분업을 한달간 계도기간으로 정해 사실상 연기한 것은 그동안 의료계의 참여거부 등으로 의사들뿐 아니라 약사들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여서 분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 유예기간 중 미비점을 세심히 살펴 차질이 없도록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 옳았다.
그런데도 그동안 착실한 준비는 커녕 의약계의 이해다툼에 당국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급기야 상당수의 병·의원이 폐업한 가운데 의약분업이 강행됐으니 잘 될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폐업을 철회한 병·의원들 거의가 의약분업 실시를 위한 전자결재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는가 하면 인근 약국에 처방약품 리스트도 넘겨주지 않아 처방약품을 구비하지 못한 약국을 찾은 환자들은 대형약국에서 처방약을 구해 올 때까지 장시간 기다리든가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특히 영세한 동네약국들은 제약사들의 현금결제요구로 400여 품목에 이르는 기본의약품도 구비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고도 의약분업이 제대로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억지다.
이같은 의약분업의 파행은 의약계의 첨예한 이해를 조정하고 그동안 모의 테스트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는 등 보건복지부가 해야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탓이다. 이제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상 의료계는 대승적 차원에서 일단 분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며, 당국 또한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 시행과정에서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보건당국은 의약분업의 파행이 하루속히 수습 정상화되도록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균형잡힌 행정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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