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山
경의선은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를 종단,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국제간선 철도다.
전장 499.3㎞의 경의선이 1906년(광무10년) 4월 3일 개통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조정은 처음 부설권을 주었던 러시아 상사가 재력이 없어 못하게 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 외세배격을 위한 직영에 나섰다. 조병식을 총재로 한 ‘서북철도국’을 내장원에 설치, 서울∼개성간 철도 부지측량에 나섰다.
그러나 노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통감부는 서울∼신의주간 군용철도부설이 필요하다며 ‘임시군용철도감부’란 것을 두고 철도부대 병력을 동원해 제멋대로 공사에 나섰다. 조정은 일본의 강요에 못이겨 할수 없이 50년간 임대조건으로 경의선 부설권을 내주고 말았다.
군인과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경의선부설을 서두른 일본은 불과 733일만에 개통시켰다. 전근대적인 공법으로 하루에 730m를 부설한 셈이니, 공사가 얼마나 강행군이었던가를 짐작케 한다.
개통시키고나서 개량·보수공사(터널 신설 19군데 교량증개축 328군데)를 하는데 본공사기간보다 긴 4년이 걸렸다. 경의선이 만주까지 운행된 것은 1911년 11월 압록강철교가 가설되고 나서다. 전 구간이 복선화 된 것은 1943년 5월로 대륙침략과 식민지 수탈을 위해서였다.
1945년 8월말, 38선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면서 끊긴 경의선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 서울∼개성간마저 끊겨 문산간 46㎞만 운행해온지 오래다.
1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사항으로 문산∼장단간 12㎞(남측구간), 장단∼봉등간 8㎞(북측구간) 등 허리가 끊긴 20㎞의 경의선 복원공사가 연내 추진을 보게 됐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철도종단점의 소원(표어)이 이루어져 비무장지대를 관통, 개성∼사리원∼평양∼안주∼신의주까지 달릴 날이 그리 멀지 않을것 같다. 여기엔 북측 공사비를 남북경협자금으로 입체하든지, 북측 차관도입에 남측이 보증을 서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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